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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東京大 캠퍼스와 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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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432회 작성일 2011-01-07 13:22본문
지난해 말 학생들과 함께 東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일정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서 東京大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십년 전 안식년을 여기서 보냈기에 낯설지 않았지만 이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둘러본 東京大는 전혀 새로 왔습니다. 東京大 캠퍼스는 원래 德川幕府 시대 서쪽 성주였던 前田 가문의 江戶 저택이었습니다. 19세기 말 明治維新이 성공하면서 維新정부가 이 저택을 최고 엘리트 양성을 위한 학교(東京一高)로 만든 것이 그 후 東京大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캠퍼스 곳곳에는 저택의 정원풍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東京大를 상징하는 赤門만 해도 그러합니다. 이 문은 원래 저택의 정문이었는데 헐지 않고 잘 유지해서 지금은 東京大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1백 미터쯤 위에 정문이 따로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赤門을 東京大 정문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東京大 캠퍼스 정원풍의 압권은 캠퍼스 거의 한 복판에 위치한 育德園이라는 이름의 정원과 心字池라는 이름의 연못입니다. 育德園과 心字池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 조경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育德園과 心字池의 존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그 이름 때문입니다. 心字池! 이것은 ‘마음 心 字의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연못’도 아니고 ‘마음 心 字의 연못!’이 얼마나 멋드러진 이름입니까?
이 주위에는 七德堂이라는 이름의 검도장과 화살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心 字의 연못’은 그 이름에서부터 검을 휘두르는 학생, 화살을 당기는 학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직접 가슴으로 전달하겠지요. 또 여기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懷德館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茶道 실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학생들에게 德을 가슴에 품도록 하려는 가 봅니다. 이렇게 보면 東京大가 추구하는 교육 목표가 ‘德’이구나 하는 것을 쉽게 눈치 챌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育德園 ․ 心字池에서부터 검도장으로, 또 七德堂에서 懷德館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모두 흙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흙 길을 걷다 보면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물론 주위 환경이 이를 받쳐 주어야하지만 東京大 캠퍼스가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탓인지 곳곳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그 나무들로 인해 훌륭한 숲을 이루어 그 숲 안에 들어가면 자연 사색에 빠지게 되는 데 이런 경험은 비단 저만의 경험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東京大의 사색 공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후문으로 가면 곧바로 上野 공원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옵니다. 그 후문에서 조금 내려오면 왼쪽에 東京大 병원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면 미쓰비시 창업주의 큰 고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택을 지나면서 만나는 큰 길을 건너가면 거기가 바로 上野공원입니다. 이런 연결 때문에 혹자는 東京大 캠퍼스를 上野공원까지 확대해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東京大를 흉내 내 만든 京城帝大(서울대 전신)도 창경궁 옆에 위치했나 봅니다.
東京大에서 上野공원으로 연결된 언덕길에는 이름이 있는데 東京大 사람들은 無緣의 坂라고 부릅니다. 無緣이란 불교 용어인데 有緣과 반대되는 의미는 아니지요. 모든 대상과의 차별성 없는 인연.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친한 사람과 소원한 사람 간에 어떤 차별을 두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無緣이지요. 누군가를 상대할 때 이런 無心한 마음이 유지된다면 그는 이미 해탈한 인간이 되겠지요. 東京大 출신의 소설가가 이 언덕을 배경으로 이런 주제의 소설을 썼기에 이 곳이 無緣의 坂로 명명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上野 공원에 들어서면 큰 연못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연못이 유명한 不忍池입니다. 不忍을 우리말로 ‘참을 수 없는’으로 번역하는데 저는 ‘견딜 수 없는’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체코 출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그 수상 작품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아마 ‘견딜 수 없는...’으로의 번역이 맞다고 봅니다. 사랑의 경우도 ‘참을 수 없는 사랑’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이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우리들 마음공부도 견딜 수 없어야만 제대로 된 마음공부가 되리라 봅니다.
이처럼 東京大 캠퍼스와 그 주위는 이름 하나하나로부터 우리를 사색에 잠기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익산 총부를 그 곳에서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총부라는 이름을 생각하면서부터 저의 사색은 이내 끝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기능적이고, 행정적 표현 때문이지요. 이런 식의 표현으로는 마음공부를 향한 풍부한 담론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익산 총부는 실제로 그러할까요? 혹시 설계는 잘 되었는데 마감이 잘못 되어서 이런 인상이 심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캠퍼스 곳곳에는 저택의 정원풍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東京大를 상징하는 赤門만 해도 그러합니다. 이 문은 원래 저택의 정문이었는데 헐지 않고 잘 유지해서 지금은 東京大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1백 미터쯤 위에 정문이 따로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赤門을 東京大 정문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東京大 캠퍼스 정원풍의 압권은 캠퍼스 거의 한 복판에 위치한 育德園이라는 이름의 정원과 心字池라는 이름의 연못입니다. 育德園과 心字池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 조경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育德園과 心字池의 존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그 이름 때문입니다. 心字池! 이것은 ‘마음 心 字의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연못’도 아니고 ‘마음 心 字의 연못!’이 얼마나 멋드러진 이름입니까?
이 주위에는 七德堂이라는 이름의 검도장과 화살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心 字의 연못’은 그 이름에서부터 검을 휘두르는 학생, 화살을 당기는 학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직접 가슴으로 전달하겠지요. 또 여기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懷德館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茶道 실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학생들에게 德을 가슴에 품도록 하려는 가 봅니다. 이렇게 보면 東京大가 추구하는 교육 목표가 ‘德’이구나 하는 것을 쉽게 눈치 챌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育德園 ․ 心字池에서부터 검도장으로, 또 七德堂에서 懷德館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모두 흙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흙 길을 걷다 보면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물론 주위 환경이 이를 받쳐 주어야하지만 東京大 캠퍼스가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탓인지 곳곳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그 나무들로 인해 훌륭한 숲을 이루어 그 숲 안에 들어가면 자연 사색에 빠지게 되는 데 이런 경험은 비단 저만의 경험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東京大의 사색 공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후문으로 가면 곧바로 上野 공원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옵니다. 그 후문에서 조금 내려오면 왼쪽에 東京大 병원이 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면 미쓰비시 창업주의 큰 고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택을 지나면서 만나는 큰 길을 건너가면 거기가 바로 上野공원입니다. 이런 연결 때문에 혹자는 東京大 캠퍼스를 上野공원까지 확대해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東京大를 흉내 내 만든 京城帝大(서울대 전신)도 창경궁 옆에 위치했나 봅니다.
東京大에서 上野공원으로 연결된 언덕길에는 이름이 있는데 東京大 사람들은 無緣의 坂라고 부릅니다. 無緣이란 불교 용어인데 有緣과 반대되는 의미는 아니지요. 모든 대상과의 차별성 없는 인연.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친한 사람과 소원한 사람 간에 어떤 차별을 두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無緣이지요. 누군가를 상대할 때 이런 無心한 마음이 유지된다면 그는 이미 해탈한 인간이 되겠지요. 東京大 출신의 소설가가 이 언덕을 배경으로 이런 주제의 소설을 썼기에 이 곳이 無緣의 坂로 명명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上野 공원에 들어서면 큰 연못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연못이 유명한 不忍池입니다. 不忍을 우리말로 ‘참을 수 없는’으로 번역하는데 저는 ‘견딜 수 없는’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체코 출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그 수상 작품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아마 ‘견딜 수 없는...’으로의 번역이 맞다고 봅니다. 사랑의 경우도 ‘참을 수 없는 사랑’보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이 얼마나 듣기 좋습니까? 우리들 마음공부도 견딜 수 없어야만 제대로 된 마음공부가 되리라 봅니다.
이처럼 東京大 캠퍼스와 그 주위는 이름 하나하나로부터 우리를 사색에 잠기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익산 총부를 그 곳에서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총부라는 이름을 생각하면서부터 저의 사색은 이내 끝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기능적이고, 행정적 표현 때문이지요. 이런 식의 표현으로는 마음공부를 향한 풍부한 담론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익산 총부는 실제로 그러할까요? 혹시 설계는 잘 되었는데 마감이 잘못 되어서 이런 인상이 심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