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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정해년 비행기에 몸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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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633회 작성일 2011-01-07 13:19

본문

다음 주면 설이다. 부모와 일가친척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이 긴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색다른 고민을 한다. 이럴 때 시내의 복잡한 교통 사정으로 평소엔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을 한 번쯤 찾아보는 일은 뜻 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 장소로서 서울 한 복판에 솟아 있는 남산이 안성맞춤이다. 남산은 도시 경관 상으로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장소이다. 또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항상 가깝게 느끼지만 쉽게 가보지 못하기에 설 연휴를 빌려 한 번쯤 올라갈 볼 만하다.
장충동 국립극장 부근에 차를 세워 놓고 숲 길을 따라 남산 팔각정에 오르면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온다. 팔각정에서 무심코 서울을 내려다보면 시내를 바삐 돌아다니는 자동차는 장난감의 물결처럼 보인다. 자동차가 이럴진대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또 크거나 작거나 하면서 구별해 왔던 건물들도 하나 같이 작게 보인다. 그러니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깨끗하고 더러운 건물, 좋고 나쁜 차, 또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구분이 어디 생겨날 수 있을까? 이 때 우리는 애착을 갖던 재화, 심지어 사람들조차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이제 자리를 옮겨 그 옆에 우뚝 솟아있는 전망대로 가 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정상에 서면 그 크다는 서울도 우리들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런 전망 속에서는 한강과 북한산 정도가 다른 것과 구분되어 자태를 드러낼 뿐이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하나같이 똑같이  작게 보인다. 서울서 제일 높다는 63빌딩조차 그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 우리는 악착같이 들러붙어 살고 있는 곳, 애착을 갖고 바득거리면서 사는 이 도시가 얼마나 하찮은 공간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보자. 창밖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들은 한없이 작아지다가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내 집, 내 땅, 내 도시, 내 나라이다. 여기서 눈으로 만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하늘(天)과 땅(地)의 구분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가 우주만유의 근원일까? 아니다. 이제 지구를 벗어나 우주 한 가운데에 떨어지면 천지의 구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별들을 마주하고, 또 그 별들에서 생겨나는 셀 수 없는 현상들이 있지만 우리들 눈이 마주하는 것이란 모든 것이 하나 되는 우주라는 공간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경계도 생겨날 수 없다. 그야말로 色則是空, 空則是色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본래 인간의 마음은 이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명화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들은 반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의식주의 예만 들어도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쉽사리 느낄 수 있다. 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얼마나 잘 보호해주는 가에 달려 있다. 이 정도의 구분도 色則是空의 진리에서 보면 過한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주거의 이런 원초적 기능은 무시되고, 중요하지 않은 기능들에 의해 수많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지역에 따라, 전망에 따라, 아파트 구조에 따라, 층수에 따라 주거의 차이가 수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광고는 이런 차이가 실제보다 더 있는 것처럼 조작한다. 사람들 입 맛에는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나 스타벅 커피나 그 맛 차이가 별로 없는데도 차이를 부단히 만들어 낸다. 그래야만 소비가 촉진되면서 매출이 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업주는 많은 돈을 광고에 쏟고, 그 결과 소비자들은 다른 커피인 양 착각하면서 마신다. 커피 맛조차도 이렇게 따지는 시대인데 오늘에 사는 우리들은 의식주의 다른 것들에서 얼마나 많은 미망을 쫓으면서 살고 있을까?
우리들은 어떤 욕망을 가졌기에 생겼던 고통, 또 한 순간의 꿈 같은 삶에 대한 애착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은 죽음과 같은 두려움에 대해 관조할만한 여유조차 없다. 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하늘의 뜬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내 모습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밤 비행기에 우리들 몸을 한번 맡겨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한 마음의 평화와 우주와의 깊은 내면적 조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경험해 보자. 그것마저도 힘들면 설 연휴에 북한산에 올라 작아진 서울이 웅변해 주는 구별 없는 세상, 차이 없는 세상을 마음으로 느껴보자. 그 느낌 속에서 色則是空, 空則是色의 진리를 체감할 수 있다면 이처럼 의미 있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