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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원불교의 박물관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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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381회 작성일 2011-01-07 13:12본문
21세기를 가리켜 문화의 세기라고 말한다. 따라서 문화산업은 점차 그 중요성을 더해 갈 것이다. 그런데 문화산업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문화산업을 굴뚝 없는 산업에 비유한다. 그렇지만 문화산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우리의 감각과 직결된 산업이다. 즉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과 직접적으로 연련 된 산업이다. 먼저 시각과 연결해서는 책, 영화, 패션, 디자인 등이 이에 속한다. 또 청각과 관련해서는 음악이 대표적인 예다. 미각과 관련해서는 각종 음식물이 이에 속한다. 그렇지만 촉각과 후각의 경우는 그 자체로서 지금까지는 산업적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해서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오관 중 부가가치(상업성)가 가장 높은 것은 시각이다. 시각은 그 자체로서도 부각가치가 높지만 이것이 응용되는 경우 청각과 미각의 부가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청각과 미각은 그 자체로서의 부가가치밖에 없다. 즉 시각은 그것의 부가가치가 대상에 응용될 때 그 대상의 부가가치마저 크게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과거에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고장이 나지 않는 견고한 자동차를 선호했지만 오늘날은 자신을 표현하는 의미대상으로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고급차를 통해서 자신의 신분을 ‘품위 있게’ 과시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품위 있다’는 평가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우리 시각의 평가이다. 즉 차의 크기는 커야 하고, 색은 검정색이어야 하고, 디자인은 곡선이어야 하는 것 등이 ‘품위 있음’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데 ‘품위 있다’는 평가는 시간과 공간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지금은 검정색과 흰색과 같은 무채색이 품위 있다고 느껴진다면 미래의 언젠가는 빨강색과 노란색과 같은 원색이 품위 있다고 느껴질는지 모른다. 이처럼 시각의 평가, 아니 시각의 장난으로 인해 품위는 물론이고, 아름다움, 멋 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유행’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순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박물관은 문화산업, 특히 시각과 관련한 문화산업에 있어서 심장부에 해당한다. 제대로 된 박물관이 없이 문화산업을 일으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학생에게 교과서 없이 공부하라는 것, 군인에게 총 없이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프랑스가, 이탈리아가, 영국이, 심지어 미국조차 세계의 패션을 주도하는 것은 파리에, 로마에, 런던에, 뉴욕에 세계적인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박물관에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에 의해서도 만원사례가 된다는 것도 박물관이 미적 감각 향상을 위한 훌륭한 장소로서의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원불교에 박물관이 있을까? 아니 박물관 구실을 할 수 있는 성지들은 제대로 보존되고 있을까? 그 성지들은 원불교적인 것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 그리고 원불교 성지들을 보면서 과연 원불교는 하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로부터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있을까? 교단 1백주년을 앞두고 대외적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을 차분히 챙길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원불교의 진정한 힘이 아닐는지...
그런데 문화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오관 중 부가가치(상업성)가 가장 높은 것은 시각이다. 시각은 그 자체로서도 부각가치가 높지만 이것이 응용되는 경우 청각과 미각의 부가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청각과 미각은 그 자체로서의 부가가치밖에 없다. 즉 시각은 그것의 부가가치가 대상에 응용될 때 그 대상의 부가가치마저 크게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과거에 자동차를 선택할 때는 고장이 나지 않는 견고한 자동차를 선호했지만 오늘날은 자신을 표현하는 의미대상으로서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고급차를 통해서 자신의 신분을 ‘품위 있게’ 과시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품위 있다’는 평가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우리 시각의 평가이다. 즉 차의 크기는 커야 하고, 색은 검정색이어야 하고, 디자인은 곡선이어야 하는 것 등이 ‘품위 있음’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런데 ‘품위 있다’는 평가는 시간과 공간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지금은 검정색과 흰색과 같은 무채색이 품위 있다고 느껴진다면 미래의 언젠가는 빨강색과 노란색과 같은 원색이 품위 있다고 느껴질는지 모른다. 이처럼 시각의 평가, 아니 시각의 장난으로 인해 품위는 물론이고, 아름다움, 멋 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유행’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순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따라서 박물관은 문화산업, 특히 시각과 관련한 문화산업에 있어서 심장부에 해당한다. 제대로 된 박물관이 없이 문화산업을 일으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학생에게 교과서 없이 공부하라는 것, 군인에게 총 없이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프랑스가, 이탈리아가, 영국이, 심지어 미국조차 세계의 패션을 주도하는 것은 파리에, 로마에, 런던에, 뉴욕에 세계적인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박물관에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에 의해서도 만원사례가 된다는 것도 박물관이 미적 감각 향상을 위한 훌륭한 장소로서의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원불교에 박물관이 있을까? 아니 박물관 구실을 할 수 있는 성지들은 제대로 보존되고 있을까? 그 성지들은 원불교적인 것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 그리고 원불교 성지들을 보면서 과연 원불교는 하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로부터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있을까? 교단 1백주년을 앞두고 대외적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들을 차분히 챙길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원불교의 진정한 힘이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