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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숨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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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731회 작성일 2011-01-07 13:10

본문

이번 회부터 1년간은 해외에서 글을 기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안식년을 얻어서 미국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글의 내용이 ‘시론’인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현장감을 갖기 어려워서 고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고사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아서 이를 포기하고, 시론 형태를 제 전공인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 원불교 사상이라는 형식으로 바꾸어 글을 써 볼 까 합니다. 교도님들의 넓은 이해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주제로서 반야바라밀다심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불교에는 금강경, 법화경, 반야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금강경을 최고로 치지요. 대종사님도 금강경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그 금강경의 정수를 모아 놓은 것이 반야심경인데 말 그대로 심장과 같은 경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심경은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空’으로 규정하고(서론), ‘空’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며(본론), ‘空’을 앎으로서 깨우침을 얻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결론)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則是空 空則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과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 ‘空’에 대한 규정이라면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名 亦無無名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이 ‘空’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空’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 사상과의 연관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六根’에 해당하는 眼耳鼻舌身意와 ‘六境’에 해당하는 色聲香味觸法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色(보고), 聲(듣고), 香(냄새 맡고), 味(맛보고), 觸(접촉하고) 등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그리고 眼(눈), 耳(귀), 鼻(코), 舌(입), 身(몸) 등의 감각기관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요.
또 감각기관이 두뇌와의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意(識)’입니다. 그 ‘意(識)’은 ‘法’을 통해 형성되는데 이 ‘法’은 受想行識 등을 통해 형성됩니다. ‘受’란 느낌, ‘想’은 느낌 다음의 마음상태, ‘行’은 마음상태에서 일어나는 충동이나 의지, ‘識’은 총합적인 판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괴로움을 느끼면(受) 분노심이 생겨나고(想), 분노심은 미움으로 변해서(行), 이런 미움의 체험 속에서 僞惡醜란 관념(識)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법’이란 이런 모든 과정들이 포함된 것이지요.
그리고 ‘受想行識 亦復如是’의 표현은 受則是空 空則是受 想則是空 空則是想 行則是空 空則是行 識則是空 空則是識(‘느낌’ 가운데 공이 있고, 공 가운데 ‘느낌’이 있으며, ‘생각’ 가운데 공이 있고, 공 가운데 ‘생각’이 있으며, ‘충동’ 가운데 공이 있고, 공 가운데 ‘충동’이 있으며, ‘판단의식’ 가운데 공이 있고, 공 가운데 ‘판단의식’이 있다)을 의미합니다. 受想行識이라는 정신작용을 ‘色’이라는 육신작용에 비유해서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신작용에서도 생략된 표현이 사용됩니다. 육신작용은 ‘色聲香味觸’인데 그 가운데 ‘色則是空 空則是色’이라고 유독 ‘色’ 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간결한 반야심경을 만들기 위한 이유 말고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따라서 ‘色則是空 空則是色’이라는 표현 뒤에는 聲則是空 空則是聲 香則是空 空則是香 味則是空 空則是味 觸則是空 空則是觸(‘들리는 소리’도 곧 공이요, 공도 곧 들리는 소리이며, ‘냄새나는 향기’도 곧 공이요, 공도 곧 ‘냄새나는 향기’이며, ‘느끼는 맛’도 곧 공이요, 공도 곧 ‘느끼는 맛’이며, ‘느끼는 촉감’도  곧 공이요, 공이 곧 ‘느끼는 촉감’이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야심경에서 ‘無’ 眼耳鼻舌身意, ‘無’ 色聲香味觸法이라는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감각기관과 그 역할에 대해 모두 ‘無’라고 단호하게 규정했습니다. 이 표현이 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우리들이 감각기관을 통해 느끼는 것으로부터 초월해 있으라는 소리이지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들은 모두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들에 얼마나 많이 집착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더 아름다워지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많은 힘을 얻으려고 하는 욕심들이 그것입니다.
결국 육근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하면 육경에 의한 경계를 당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열반의 길에 들어서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이를 웅변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마도 반야바라밀다심경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