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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신약 개발을 위한 교단 노력은 어디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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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335회 작성일 2011-01-0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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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단연 교리와 교화이다. 이를 기업 활동과 관련지으면 교리는 상품에, 교화는 마케팅에 해당한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잘 팔면 기업이 번성하는 것처럼 교리도 좋고, 또 좋은 교리를 일반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하면 어느 교단이든지 흥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원불교도 쉽게 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종사님이 만들어 놓으신 교리가 상품으로서 얼마나 좋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소비자들이 공부하기 쉽게 잘 정리해 놓으신 데다 시대에 맞게 산뜻한 감각으로 포장까지 해 놓지 않으셨는가? 그러면 원불교 제품은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데 그것은 무슨 이유일까? 심지어 최근의 강도 높은 마케팅 활동, 즉 교화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영업 성적이 신통치 않은데 혹시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증거는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제품도 좋고, 그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종업원들도 열심히 동참하는데 이런 노력들이 판매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혹시 우리 원불교도 이런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교단 경영을 위한 획기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그럼에도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가도 부도사태를 겪는 상황에서 교단이라고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단이 최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일반 기업의 경우 구조조정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데 교단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조치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어떤 식의 구조조정이 되어야 할까? 한마디로 불필요한 부분은 도려내고, 필요한 부분만을 껴안는 구조조정 기본을 답습하는 길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꼭 껴 않고 가야할 부분은 교리와 교화와 관련된 조직이고, 축소하거나 도려내야 할 부분은 사업 조직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교단은 다른 교단에 비해 사업부서가 상대적으로 많다. 이것은 교단 초창기 경영이 어려웠던 시절 이를 극복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 그 때에 비해 신도수가 크게 증가된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취지가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사업 조직 중에서 재가교도가 담당해도 좋은 부분은 과감히 위임하고, 출가교도들은 교리와 교화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리와 교화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연구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손발이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이를 제어하는 두뇌 기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단은 대종사님이 만드신 교리에서 거의 한 발작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도 달라지는데 이런 입맛에 맞는 신약 개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이다. 각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쏟는 엄청난 노력과 비교할 때 우리 교단은 아예 연구소의 불마저 끄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작업은 결국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할 텐데 특히 원광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본인의 무지 탓인지는 몰라도 원불교학과는 현재 교역자 양성에 몰두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런 식으로 교육기능에만 몰두하면 연구 기능을 달성하기 힘들다. 만약 학과 차원에서 연구 기능을 담당하기에 힘에 부치면 대학 차원에서 연구 기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맞추는 신제품이 제때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역자 양성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금강경은 석가모니 사후 5백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뜻있는 교역자들이 불교의 현세화를 비판하기 위해 이단을 각오하면서 쓴 경전이라고 한다. 또 기독교는 바울이 만든 기독교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기독교를 지금의 기독교로 다시 각색한 사람이다. 우리 원불교도 금강경을 쓴 교역자들이나 바울처럼 시대에 맞는 신약을 제조할 수 있는 연구자들을 계속해서 배출해야만 생명력 있는 교리로서 교도들을 마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신 대종사님이 그렸던 원불교의 참 미래상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