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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황우석 교수의 ‘말’을 해독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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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517회 작성일 2011-01-07 13:03

본문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연말에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진위를 둘러싼 논쟁이 세상을 온통 들끓게 하고 있다. 서울의 모 방송이 난자 채취와 관련해서 황 교수 연구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부터 논쟁이 촉발되었는데 이제는 연구 자체의 진실성 여부를 놓고 연구 당사자들끼리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공방이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비춰져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누구 말이 옳은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은 황 교수 말이 진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줄기세포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주위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빨리 나타나 고통 받는 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이다. 게다가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구가 성공하면 국가발전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인가.
이런 기대와는 달리 황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사람이 연구가 허위라고 하는 주장을 굳히지 않아 우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말이 옳은지에 대해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서양과 동양은 진실 규명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런 구분이 오늘날 사실상 사라지긴 했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서양인은 진실을 ‘과학처럼’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벌이는 것과 같은 진실 규명이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할 것이다. 법정이란 사실 관계 여부를 둘러싸고 판단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라면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실험을 재현해서 다시 한번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황 박사도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고 하니 이 역시 ‘과학처럼’ 증명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객관적이긴 해도 우리 마음에 와 닫는 방법은 못된다. 게다가 황 박사가 자신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입증하더라도 그의 명예는 과거와 같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그의 말은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의사소통에 있어서 수반되는 ‘비합리적’인 문제에 대해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수사학의 요체를 로고스(논리), 파토스(정열), 에토스(윤리)로서 정의했는데 로고스만이 있는 수사를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의 수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수사에 있어서 로고스 못지않게 파토스와 에토스와 같은 비합리적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황 박사의 말이 진실로서 드러나더라도 그것은 로고스에 입각한 것이지 파토스와 에토스에 입각해 있지 않기에 수사의 정당성을 얻을 수가 없다. 황 박사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숨김으로서 이미 한 번의 거짓말을 해서이다.
사실 학교에서 배우는 수사는 로고스에 입각한 수사이다. 아니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과목을 통해 배우는 수사는 논리에 입각해 있는 수사이다. 수학이 그렇고, 과학이 그렇고, 심지어 국어까지도 그러하다. 이에 반해 사회생활을 통해서 익히는 수사는 파토스와 에토스일 것이다. 설령 로고스가 없더라도 파토스와 에토스가 수반되면 우리는 그 말을 믿게 된다. 합리성을 상실하더라도 우리들의 가슴과 통하는 통정성(通情性)에 입각한 수사이기 때문이다. (주: 교무선생님의 설법이 가슴에 와 닫는 것도 이 때문?).
동양인은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서양인과 비교해서 情이 통하는 의사소통을 중요시 해 왔다. 이 때문에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그의 ‘몸’을 통해서 나오는 자태를 더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보았다. 즉 ‘말 담론’보다 ‘몸 담론’을 더욱 의미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께서도 언어 자체보다는 언어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뜻과 행실에 그 비중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뜻과 표정(시각), 그리고 말(청각)과 시선(시각) 등이 일치하는 공감각적 의사소통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다’가 아니라 ‘본다’로 파악해야만, 그리고 상대방을 눈으로 ‘본다’가 아니라 ‘읽는다’로 파악해야만 상대방의 진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황우석 박사의 말이 진실인지의 여부도 이런 공감적 의사소통을 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