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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견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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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488회 작성일 2011-01-07 13:02본문
제가 방학마다 가족과 함께 머무는 곳은 미국 아이오아 주입니다. 아이오아 주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하는데 이웃 일리노이, 미주리, 네브라스카 주 등과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 곡창지대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온통 옥수수와 콩 밭 뿐이지요. 이 곳 아이오아 주는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여기서 작곡되었고(드보르작이 이 곳 음악학교 교장으로 왔다가 작곡), 몇 해 전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여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이곳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한 달 반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다가 어제 그제서야 비로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지를 적신다’는 표현이 입에서 절로 튀어 나올 정도로 정말로 고대하던 비였습니다. 이곳 언론 보도로는 이번 주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가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번 주에 비가 내린 것입니다. 해갈이 될 정도의 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마당에 누렇게 변색된 잔디 위에 비가 내리니까 그저 반갑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비를 내리게 한 하느님께 고마워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연 앞에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 뇌이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아마도 전자로서 문제의 해결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신을 믿게 되겠지요. 이에 반해 후자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뭄이 닥치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아마 큰 일이 난 것처럼 전국이 들썩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서 풍년이라도 들면 언제 그랬느냐 듯이 쉽게 잊어버리곤 하지요. 여기에 언론도 가세해서 가뭄이 들 땐 메말라 갈라진 땅을 연일 보여주다가, 풍년이 들면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을 보여주기 바쁘지요. 마치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그런 결실이 맺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신기하게 미국에선 그런 식의 언론보도도 찾기 힘들지만 이 곳 곡창지대의 사람들에게서 조차 그런 극단적 태도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자연의 질서 앞에 겸허해 진 탓일까요?
그런데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2백여 년 전 청교도 정신 하에서 세워진 그야말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가뭄이 들면 하느님께 빌면서 비를 내려 달라고 애원할 것이라고 쉽게 연상이 되는데 그런 낌새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옆 마을에서는 매년 하는 옥수수 축제가 예정대로 다음 주에 열린다고 합니다. 어디서 옥수수를 구해 왔는지 모르지만 나흘 동안 사람들이 모여서 16톤의 옥수수를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아마 옥수수를 먹으면서 이 나마의 옥수수를 열리게 한 땅에 대한 고마움, 아니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후로 말하면 한국만큼 좋은 나라는 없지요. 사시사철이 있지요. 또 여름이라도 그렇게 덥지 않고, 겨울이라도 그렇게 춥지 않지요. 그에 비하면 이 곳 미국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유학 시절 따뜻해서 아침에 반팔을 입고 나섰다가 오후에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져 집에 돌아와 코트로 바꿔 입고 나갔던 적도 일 년 중 몇 번씩이나 있었으니까요. 또 동경에 2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위도가 서울보다 낮아서 날씨는 더운데다 습도마저 높아서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또 겨울에도 높은 습도 탓에 섭씨 0도만 되어도 뼈가 으스러지도록 추웠습니다. 그래도 미국과 일본 날씨는 지구의 다른 곳에 비하면 좋은 편이지요.
어쩌면 전 지구적 입장에서 보면 온화한 한국 기후가 ‘비정상’이고, 험한 날씨가 ‘정상’이 아닐까요? 물론 아열대 기후로 옮아가면서(과거엔 대구에서 사과가 열렸지만 이제는 북쪽인 문경 쯤에서 열리는 것이 단적인 예) 한반도가 서서히 더워진다고 하지만 그 탓에 겨울이 예전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지요. 게다가 한반도가 더워지는 것만큼 지구의 다른 어떤 곳은 또 추워지고 있겠지요. 그것이 지구의 조화이자 나아가 우주의 조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하루에도 지구와 같은 별이 수만 개 씩 사라지고, 또 수만 개 씩 생겨나지만 우주의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무질서 속의 조화야말로 참된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날씨도 바로 무질서 속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덥고 내일 추워지면 사람들은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여름이면 반년 후에는 반드시 겨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조그마한 날씨 변화에도 우리네 마음이 크게 동요된다면 날씨를, 아니 자연을 우리 중심으로만 생각한 탓이 아닐까요? 즉 좋은 날씨만을 날씨로 생각한 탓이겠지요. 이번 여름 서울의 날씨가 무척 더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상이고, 오히려 예년의 여름 날씨가 비정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음공부의 중요한 항목이 아닐는지요.
그런데 올 여름 이곳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한 달 반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다가 어제 그제서야 비로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지를 적신다’는 표현이 입에서 절로 튀어 나올 정도로 정말로 고대하던 비였습니다. 이곳 언론 보도로는 이번 주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가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고 했는데 다행히 이번 주에 비가 내린 것입니다. 해갈이 될 정도의 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마당에 누렇게 변색된 잔디 위에 비가 내리니까 그저 반갑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비를 내리게 한 하느님께 고마워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연 앞에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 뇌이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아마도 전자로서 문제의 해결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신을 믿게 되겠지요. 이에 반해 후자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뭄이 닥치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아마 큰 일이 난 것처럼 전국이 들썩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서 풍년이라도 들면 언제 그랬느냐 듯이 쉽게 잊어버리곤 하지요. 여기에 언론도 가세해서 가뭄이 들 땐 메말라 갈라진 땅을 연일 보여주다가, 풍년이 들면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을 보여주기 바쁘지요. 마치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그런 결실이 맺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신기하게 미국에선 그런 식의 언론보도도 찾기 힘들지만 이 곳 곡창지대의 사람들에게서 조차 그런 극단적 태도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자연의 질서 앞에 겸허해 진 탓일까요?
그런데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2백여 년 전 청교도 정신 하에서 세워진 그야말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가뭄이 들면 하느님께 빌면서 비를 내려 달라고 애원할 것이라고 쉽게 연상이 되는데 그런 낌새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옆 마을에서는 매년 하는 옥수수 축제가 예정대로 다음 주에 열린다고 합니다. 어디서 옥수수를 구해 왔는지 모르지만 나흘 동안 사람들이 모여서 16톤의 옥수수를 먹어 치운다고 합니다. 아마 옥수수를 먹으면서 이 나마의 옥수수를 열리게 한 땅에 대한 고마움, 아니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후로 말하면 한국만큼 좋은 나라는 없지요. 사시사철이 있지요. 또 여름이라도 그렇게 덥지 않고, 겨울이라도 그렇게 춥지 않지요. 그에 비하면 이 곳 미국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유학 시절 따뜻해서 아침에 반팔을 입고 나섰다가 오후에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져 집에 돌아와 코트로 바꿔 입고 나갔던 적도 일 년 중 몇 번씩이나 있었으니까요. 또 동경에 2년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위도가 서울보다 낮아서 날씨는 더운데다 습도마저 높아서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또 겨울에도 높은 습도 탓에 섭씨 0도만 되어도 뼈가 으스러지도록 추웠습니다. 그래도 미국과 일본 날씨는 지구의 다른 곳에 비하면 좋은 편이지요.
어쩌면 전 지구적 입장에서 보면 온화한 한국 기후가 ‘비정상’이고, 험한 날씨가 ‘정상’이 아닐까요? 물론 아열대 기후로 옮아가면서(과거엔 대구에서 사과가 열렸지만 이제는 북쪽인 문경 쯤에서 열리는 것이 단적인 예) 한반도가 서서히 더워진다고 하지만 그 탓에 겨울이 예전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지요. 게다가 한반도가 더워지는 것만큼 지구의 다른 어떤 곳은 또 추워지고 있겠지요. 그것이 지구의 조화이자 나아가 우주의 조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하루에도 지구와 같은 별이 수만 개 씩 사라지고, 또 수만 개 씩 생겨나지만 우주의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무질서 속의 조화야말로 참된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날씨도 바로 무질서 속의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덥고 내일 추워지면 사람들은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여름이면 반년 후에는 반드시 겨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조그마한 날씨 변화에도 우리네 마음이 크게 동요된다면 날씨를, 아니 자연을 우리 중심으로만 생각한 탓이 아닐까요? 즉 좋은 날씨만을 날씨로 생각한 탓이겠지요. 이번 여름 서울의 날씨가 무척 더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상이고, 오히려 예년의 여름 날씨가 비정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음공부의 중요한 항목이 아닐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