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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감독’ 이명박과 ‘배우’ 이명박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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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511회 작성일 2011-01-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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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말한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은 연기자의 예술이라고.” 영화에선 배우란 감독의 소품에 불과하기에 어느 배우를 캐스팅 해도 감독이 추구하는 예술성을 전달하는 데 별 문제가 없지만 연극에선 연기자가 바뀌면 연극 맛이 달라지기에 이런 말이 나온 듯하다. 더블 캐스팅을 하면 같은 연극이라도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감독이자 연기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감독은 물론이고, 연기자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특히 집권 초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임기를 마칠 때까지 두 가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지도자는 20세기 들어서 루즈벨트 대통령 정도가 아닐까? 국민경제를 책임진 감독으로서 그는 경제학자 케인스의 시나리오를 충실히 이행하여 대공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리고 노변담화(爐邊談話)라는 라디오 프로를 통해 훌륭한 연기력까지 선보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훌륭한 연기자라기보다는 훌륭한 감독일 것이다. 그는 60~70년대 어려웠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감독으로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좋은 시나리오를 선택했으며, 캐스팅도 제대로 했다. 그래서 이들 연기자들 중에는 관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은 사람들이 좀 나왔다. 포철 신화를 만든 박태준 ‘연기자’도 박정희 ‘감독’이 만들어 낸 훌륭한 배우일 것이다.
반면 연기력으로 성공한 지도자로서 레이건 대통령을 꼽고 싶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할 정도로 국정에 어두웠지만 전직 영화배우인 탓인지 늙은 나이에도 그의 말과 행동에는 카리스마가 풍겼다. 이런 훌륭한 연기력 뒤에는 홍보전문가 출신의 거겐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연기자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레이거노믹스를 연출한 감독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중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우리나라에서 레이건과 유사한 지도자는 전두환 대통령이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하면서까지 자신의 권한을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과감히 일임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80년대 초 우리 경제는 예상치 않은 호황을 맞이했는데 부하를 감독으로 삼아서 그 감독의 시나리오를 충실히 따른 전 대통령은 진정한 의미의 ‘경제용’ 감독일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1백일 동안 보여준 대통령 역할은 감독이었을까? 아니면 연기자였을까? 불행히도 이 대통령은 연기자로서, 감독으로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 대통령이 말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 마음과 멀어진다는  사실은 연기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또 주연급 배우 캐스팅도 실패했다는 점도 감독으로서의 역량 부족에 해당한다. 고소영 내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실인사를 해서는 안되는 게 감독의 기본 자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그 이유는 대통령 자신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국민들이 자연인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현대건설의 젊은 사장이라는 신화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명박 ‘사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연급 연기를 펼친 것은 아니다. 정주영 회장 혼자서 주연하고, 감독하고, 시나리오까지 쓴 영화에서 조연이었을 뿐이다. 물론 성공한 조연이었지만 그래도 ‘사장’ 이명박은 정주영 ‘회장’ 한 분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연출까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상을 해 보는 것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통령의 말에 대해 ‘아니요’라는 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만 하더라도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니 연기했으면 좋다는 의견만 정부 일각에서 있었더라도 이 정부가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리지 않을 텐 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내각이 총사퇴 하고,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이 사표를 낸 상항에서 조만간 새로운 진용이 꾸며질 것이다. 그렇지만 새 진용의 연기가 진정으로 변화해야만 국민들이 바라는 새 판이 나올 수 있다. 유괴사건으로 일선 경찰서까지 찾아가는 대통령의 행동 하에선 아래 사람들의 연기와 연출력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성공하려면 레이건 대통령처럼 큰 시나리오 하에서 연기해야 할 것이고, 감독으로서 승부를 걸려면 박정희 대통령처럼 시나리오에 적합한 인재를 찾아 그가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