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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오마하의 ‘賢人’과 월스트리트의 ‘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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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998회 작성일 2011-01-07 14:53본문
투자전문가인 워렌 버핏은 세계에서 첫 번째 가는 부자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 전까지 그의 재산은 시가로 600억 달러 이상이었는데 이 액수는 우리나라 올해 예산의 3분의 1쯤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런 엄청난 돈을 오로지 주식투자를 통해 벌었기에 그는 세계자본주의의 최대 수혜자인 듯싶지만 세계 금융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선 한참 빗겨나 있는 비주류 투자가이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그를 ‘오마하의 현인(oracle)’이라고 비꼬아 추겨 세운다(현인이라도 wiseman과 oracle 사이엔 차이가 있다).
그의 활동 무대인 오마하는 월스트리트로부터 무려 2천여 킬로나 떨어진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이다. 오마하를 둘러싸고 있는 네브라스카주와 아이오아주는 미국의 곡창지대로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온통 옥수수 밭뿐이다. 우리로 말하면 만경평야 한 가운데 있는 김제시쯤에 해당한다. 금융산업과 전혀 어울릴 듯 싶지 않은 이런 시골에 자신의 회사인 버크셔 해더웨이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번지르르한 월스트리트 금융인들 눈에는 버핏이 촌뜨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핏은 주식투자와 관련해서 월스트리트 사람들에 비해 하나도 못하지 않다. 그가 쌓은 엄청난 재산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는데 그의 주식투자 방식은 의외로 간단한다. 저평가된 주식을 쌀 때 매입해서 가격이 오르면 파는 방식인데 물론 대다수 투자자들도 이렇게 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의 투자 호흡은 매우 길다. 길게는 30년까지 내다보며 주식을 사고 판다. 그래서 10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지 않을 거면 아예 주식을 사지 말라는 철학을 전파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원칙을 꾸준히 지켜옴으로써 그는 오늘날 성공을 일궈냈다.
버핏은 자신의 이런 투자를 가리켜 가치투자라고 부른다. 가치투자란 성장가능성이 있는 주식 중에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것으로 미래 가치를 현재에 투자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정석 투자로서 넣다 뺐다를 반복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의 투자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당장의 투자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렇게 긴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이들은 단타 매매에 치중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할 위험 가능성을 금융공학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최고의 수학으로 무장한 이론들을 등장시켜 자신들의 탐욕을 끊임없이 채우고자 했다.
그러나 금융공학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퍼질수록 금융산업은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수식을 앞세운 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파생상품이란 위험 부담을 떨구기 위해 만든 상품이지만 위험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로서 경기가 좋아지면 위험 가능성이 줄어들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그 폭탄은 폭발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어 온 것은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일하며 뭔가를 생산해 왔던 제조업자들은 이들 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그 폭탄은 마침내 폭발했고, 전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세상을 갖고 놀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이는 재화(財貨)에 있어서 ‘화(貨)’의 위험성을 간과한 결과라고 본다. 노자 <도덕경>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실체가 없는 ‘화’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 않는다(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재화에서 재(財)는 농산품・공산품처럼 실체가 있는 ‘실물’임에 반해 화(貨)는 금융처럼 실체가 없는 ‘상징’이다. 소위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말은 실물경제가 단단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자는 재화 중에 ‘화’만을 끄집어서 금융 같은 상징산업의 위험성을 일찍 간파했다.
버핏은 노자의 이런 철학을 굳게 믿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결단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시가로 4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전 재산 중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게다가 50년 전에 3만 2천 달러(현 시가 70만 달러)에 구입한 낡은 주택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핏처럼 “황금(貨) 보기를 돌같이 하면 황금은 절로 굴러 온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일까?
워렌 버핏은 하원의원에 당선된 아버지를 따라 워싱턴 D.C에 있는 우드로 윌슨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7세가 되기 전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경영대학원 학부과정에 진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이 아니라 학부 과정입니다. 버핏은 원래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하도 성화를 하셔서 대학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2년 동안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1949년 가을 필라델피아에서 버핏이 모습을 감춥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째에 네브라스카 대학 링컨 경영대에 편입합니다.
1950년 봄 1년 만에 14개 과목을 수강하고 네브라스카 대학 링컨 경영대를 졸업합니다.
대학교를 3년 만에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대학 내내 줄곧 A학점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 때 버핏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1950년 여름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버핏이 떨어진 이유는 결코 그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 그가 존경하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 교수가 있는 컬럼비아 대학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에 지원하여 입학을 허가받았습니다.
1951년 컬럼비아 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버핏의 성적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사상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그의 활동 무대인 오마하는 월스트리트로부터 무려 2천여 킬로나 떨어진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이다. 오마하를 둘러싸고 있는 네브라스카주와 아이오아주는 미국의 곡창지대로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온통 옥수수 밭뿐이다. 우리로 말하면 만경평야 한 가운데 있는 김제시쯤에 해당한다. 금융산업과 전혀 어울릴 듯 싶지 않은 이런 시골에 자신의 회사인 버크셔 해더웨이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번지르르한 월스트리트 금융인들 눈에는 버핏이 촌뜨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핏은 주식투자와 관련해서 월스트리트 사람들에 비해 하나도 못하지 않다. 그가 쌓은 엄청난 재산이 웅변적으로 말해주는데 그의 주식투자 방식은 의외로 간단한다. 저평가된 주식을 쌀 때 매입해서 가격이 오르면 파는 방식인데 물론 대다수 투자자들도 이렇게 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의 투자 호흡은 매우 길다. 길게는 30년까지 내다보며 주식을 사고 판다. 그래서 10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지 않을 거면 아예 주식을 사지 말라는 철학을 전파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원칙을 꾸준히 지켜옴으로써 그는 오늘날 성공을 일궈냈다.
버핏은 자신의 이런 투자를 가리켜 가치투자라고 부른다. 가치투자란 성장가능성이 있는 주식 중에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서 투자하는 것으로 미래 가치를 현재에 투자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정석 투자로서 넣다 뺐다를 반복하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의 투자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당장의 투자 이득에 눈이 먼 사람들은 이렇게 긴 호흡을 할 수가 없다. 이들은 단타 매매에 치중하게 되고, 여기서 발생할 위험 가능성을 금융공학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최고의 수학으로 무장한 이론들을 등장시켜 자신들의 탐욕을 끊임없이 채우고자 했다.
그러나 금융공학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퍼질수록 금융산업은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수식을 앞세운 파생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파생상품이란 위험 부담을 떨구기 위해 만든 상품이지만 위험 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로서 경기가 좋아지면 위험 가능성이 줄어들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그 폭탄은 폭발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어 온 것은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하게 일하며 뭔가를 생산해 왔던 제조업자들은 이들 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그 폭탄은 마침내 폭발했고, 전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세상을 갖고 놀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이는 재화(財貨)에 있어서 ‘화(貨)’의 위험성을 간과한 결과라고 본다. 노자 <도덕경>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실체가 없는 ‘화’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 않는다(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재화에서 재(財)는 농산품・공산품처럼 실체가 있는 ‘실물’임에 반해 화(貨)는 금융처럼 실체가 없는 ‘상징’이다. 소위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말은 실물경제가 단단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노자는 재화 중에 ‘화’만을 끄집어서 금융 같은 상징산업의 위험성을 일찍 간파했다.
버핏은 노자의 이런 철학을 굳게 믿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결단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시가로 4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전 재산 중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게다가 50년 전에 3만 2천 달러(현 시가 70만 달러)에 구입한 낡은 주택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핏처럼 “황금(貨) 보기를 돌같이 하면 황금은 절로 굴러 온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일까?
워렌 버핏은 하원의원에 당선된 아버지를 따라 워싱턴 D.C에 있는 우드로 윌슨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7세가 되기 전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 경영대학원 학부과정에 진학.
(와튼 비즈니스 스쿨이 아니라 학부 과정입니다. 버핏은 원래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배울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는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하도 성화를 하셔서 대학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2년 동안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1949년 가을 필라델피아에서 버핏이 모습을 감춥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째에 네브라스카 대학 링컨 경영대에 편입합니다.
1950년 봄 1년 만에 14개 과목을 수강하고 네브라스카 대학 링컨 경영대를 졸업합니다.
대학교를 3년 만에 졸업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대학 내내 줄곧 A학점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 때 버핏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1950년 여름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에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
버핏이 떨어진 이유는 결코 그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1950년 그가 존경하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 교수가 있는 컬럼비아 대학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에 지원하여 입학을 허가받았습니다.
1951년 컬럼비아 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버핏의 성적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사상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