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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한국인의 DNA: 은근과 끈기일까, 아니면 빨리빨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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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834회 작성일 2011-01-07 13:34

본문

일본의 한 무사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들이 떡집 주인에게 쫓겨 집으로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그 무사는 무슨 일이냐고 떡집 주인에게 물었더니 떡집 주인은 당신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무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데도 떡집 주인은 당신 아들이 틀림없이 훔쳐 먹었다고 다그쳤습니다. 하는 수 없어 무사는 제안을 했습니다. 칼로 내 아들의 배를 갈라 그 속에 떡이 있으면 그 놈은 도둑놈이니 죽어 마땅하고 만약 떡이 없으면 무고한 생명을 죽게 했으니 떡집 주인의 목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떡집 주인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무사는 아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정직을 입증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사는 검을 휘둘러 아들 배를 갈랐습니다. 떡집 주인이 무사 아들의 배를 들여다보았지만 떡은 없었습니다. 떡집 주인은 약속대로 목을 내밀었고, 무사는 검을 내리쳤습니다. 한 번에 두 목숨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 지키는 정직과 약속의 고결함을 가르치기 위한 자랑스런 우화로서 한 때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글이라고 합니다. 수필가 김소운 선생님이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를 내세우기 위해 자신의 수필집에 담은 내용인데 느긋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무사의 행동은 정말 어리석고 졸속한 처사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인에게서 이런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은근과 끈기는커녕 모든 것을 후다닥 하고 해치우려고 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급해졌습니다. 행동도 급해지고, 마음도 급해지고... 해외에서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을 만나도 한국인을 보면 ‘빨리빨리?’ 하고 되묻는 웃지 못할 풍경을 가끔씩 경험하곤 합니다. 그래서 외국인의 눈에도 ‘한국인=빨리빨리’라는 인상이 정형화 된 듯합니다.
오늘 아침 동아일보가 세계적 검색 업체인 구글(Google)에 의뢰해서 세계인들에게 알아 본 결과도 한국인의 대표적 키워드로서 ‘급한 성격’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은근과 끈기라고 믿어 왔던 한국인의 속성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빨리빨리’가 너무 성해 지금은 숨어 지내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한국인의 DNA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은근과 끈기일까요, 아니면 ‘빨리빨리’일까요?
그런데 지난 1백 년에 걸쳐서 한국사회가 경험한 엄청난 변화를 생각하면 한국인의 심성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조차 ‘동방의 고요한 아침 나라’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나라가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구호에서 잘 드러나듯이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변한 것입니다. 이런 극적인 외부 여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부 여건인 우리들 심성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듯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근과 끈기가 정상적인 한국인의 심성이라면 ‘빨리빨리’ 정신은 이런 외부 여건의 변화가 가져다준 일종의 사회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지난 50년 동안 이룩한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도 은근과 끈기의 느긋한 자세보다는 성장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는 것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왔기에 우리들 마음 속에 ‘빨리빨리’ 라는 병이 안 생겨날리 만무하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 병이 감기와 같은 약한 병이 아니라 암처럼 독한 병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빨리빨리’ 정신으로는 우리의 마음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수행의 요법 제 1조에서도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만은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고 했는데 ‘빨리빨리’의 정신 자세로서 어떻게 자성의 정을 제대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대종사님께서도 최초 법어로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들었는데 이 역시 우리들 마음의 병을 걱정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이 빨리 개벽되고 있으니 그 마음의 병은 대종사님 살아계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독해진 게 사실이지요. 그리고 그 고질화된 병의 하나가 ‘빨리빨리’ 증세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이렇게 보면 우리들 마음공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야만 한국인의 원래 DNA였던 은근과 끈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교화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빨리빨리’ 정신으로 하면 교도수가 당장에는 눈이 띠게 늘어나겠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봅니다. 한국 교회가 짧은 기간 동안 교세를 크게 확장해 왔지만 이런 공격적 교화가 요즈음에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식 교화방식이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제 제자들 중에도 교회 한번 나가는 게 무섭다고 합니다. 친구 따라 교회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다시 나오라는 독촉 전화가 수도 없이 오기 때문이지요.
저희 교단도 창립 1백주년을 앞두고 교화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 교단도 교도 수에 집착한 나머지 ‘빨리빨리’ 식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듭니다. 목표 숫치를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숫자에 집착한 나머지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면 한번 쯤 제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무엇보다 토양이 기름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교화토양은 척박한 상태가 아닐는지... 그렇다면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거기에 물을 주고, 비료 주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이런 척박한 땅에다 나무를 심고서 많은 열매를 기대하다가 나무 자체가 말라죽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마치 일본 무사가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아들의 배를 가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교화에서도 ‘빨리빨리’보다는 은근과 끈기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화열매를 당장에 맺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우리 교화의 장애물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