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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 칼럼 [玄, 장자와 소통] 사람의 퉁소소리 자연의 퉁소소리 하늘의퉁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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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신 조회 2,032회 작성일 2011-12-04 19:55

본문

인뢰(사람의 퉁소소리)·지뢰(대지의 퉁소소리)·천뢰(하늘의 퉁소소리)



성 남쪽에 사는 스승 자기(子綦)가 책상에 기대앉았다가 하늘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자기 육신(몸)과 정신(마음)을 모두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평소 안색이 좋은 제자 자유(子游)가 그를 모시고 있다가 의아해서 물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선생님의 몸은 마른 나무와 같고, 선생님의 마음은 불 꺼진 재와 같습니다. 지금 책상에 기대어 앉아 계신 스승님은 아까 책상에 기대어 앉아 계신 스승님과 같지가 않은데요.
그러자 스승인 자기가 말했다. “자유야, 네가 나를 참 잘 관찰했구나. 실제로 지금 나는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네가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사람의 퉁소소리(인뢰人籟)’는 들었어도 아직 ‘대지의 퉁소소리(지뢰地籟)’를 들어본 적이 없지. 또 대지의 퉁소소리를 들었어도 아직 ‘하늘의 퉁소소리(천뢰天籟)’를 들어본 적이 없지?” 그러자 자유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대지의 퉁소소리, 또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감히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이에 스승 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대지가 기(氣)를 뿜어내는데 그것을 바람이라고 부르지. 바람이 불지 않으면 별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하지만 일단 불기만 하면 온갖 구멍들이 성난 듯 울부짖지. 자네는 저 ‘윙~’ 하고 부는 바람소리를 들어 보았을 것이네. 이런 거세 바람에 의해 산의 숲이 심하게 요동치면 큰 아름드리 나무에 뚫린 크고 작은 구멍들, 더러는 코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술병 같고, 술잔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좁은 웅덩이 같은데 거기서 콸콸 물이 흐르는 소리, 씽씽 화살이 나는 소리, 나직이 꾸짖는 소리, 숨을 가늘게 들이키는 소리, 크게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으며 곡하는 소리, 깊은 데서 나오는듯한 울리는 소리,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들이 나오지.
앞에서 분 바람이 가볍게 ‘우~’ 하고 소리를 내면 뒤따르는 바람이 무겁게 ‘우~’ 하고 소리를 내고, 또 산들바람이 불면 작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하지 않은가. 그러다가도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들은 다시 고요해 지네. 자네도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구부러지거나 살랑살랑 흔들흔들 하는 것을 보았겠지.”
제자인 자유가 말했다. “대지의 퉁소소리는 결국 땅 위의 모든 구멍들이 바람을 만나 내는 소리이고, 사람의 퉁소소리는 대나무 퉁소에서 나는 소리이군요. 그렇다면 하늘의 퉁소소리는 무엇인지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인 자기가 말했다. “온갖 것에 바람을 다르게 불어 넣으니까 각자 자신만의 특유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모두가 제 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소리를 내게 만든 건 과연 누구일까? 그게 바로 하늘의 퉁소소리라네”
장자 제물론 도입부인 이 글은 중국 문학사에서도 최고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평가받는 글이다. 그래서 중국 송나라의 대표적 시인인 왕안석(王安石)도 이 글을 접하면서 “책을 덮고 있어도 여러 소리들이 귀에 윙윙 들려오는 듯하다”고까지 평했다. 조선 최고의 인문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도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개울 소리를 마치 대지의 퉁소소리처럼 묘사한 바 있다.

혹자는 말하리라. 여기는 옛날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이렇게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고. 그러나 이는 그런 까닭이 아니다. 무릇 강물소리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연암협(燕巖峽) 산중에는 집 앞에 큰 개울이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마침내는 아주 귀에 탈이 생길 지경이었다.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의 종류를 다른 사물에 비유하면서 들어 보았다.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퉁소소리가 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짜개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뽐내고 건방진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찻물이 화력의 약하고 강함에 따라서 각기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아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거문고가 가락에 맞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똥땅거리는 물소리, 이는 애잔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창문에 문풍지가 떠는 듯 파르르 하는 물소리, 이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모두 그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소리라고 이미 설정해 놓고 귀가 소리를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熱河日記』「山莊雜記」」一夜九渡河記 중에서)


이처럼 우리들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같은 소리라도 얼마든지 달리 들을 수 있다. 연암은 이런 오락가락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온갖 소리에다 빗대어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사람의 퉁소소리이다. 장자가 제물론에서 지시하는 사람의 퉁소소리는 대나무로 만든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살면서 만들어내는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들은 실제 사람의 퉁소소리이다. 우리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결과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죽으면 슬퍼하고, 살면 기뻐하고, 만나면 반가워하고, 헤어지면 아쉬워하는 식의 연주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대지의 퉁소소리도 나무 구멍들에서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거기에는 사람의 퉁소소리처럼 ‘나 자신’이라는 연주자가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대지의 퉁소소리란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생겨난 자연스런 소리이기에 설령 연주자가 있더라도 그건 무심한 마음에서 나온 소리일 뿐이다. 그래서 장자는 대지의 퉁소소리를 무심한 퉁소소리의 원조인 하늘의 퉁소소리에다 비유한다. 하늘의 퉁소소리는 누군가의 연주에 의해, 또 누군가의 지휘에 의해 생겨나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그래서 하늘의 퉁소소리에선 ‘나 자신’이란 개념도 발견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무심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의 퉁소소리도 이런 무심한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하늘의 퉁소소리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하늘의 퉁소처럼 살면서 마주치는 온갖 경험들에 대해 무심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 희로애락의 감정은 크게 줄거나 아니면 아예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상태가 바로 대지의 바람이 멈추어 어떤 소리도 만들어 내지 않을 때이다. 그런데도 우리들 마음에선 바람을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것인지... 바람만 멎으면 우리들 마음구멍(심규心竅)이 만드는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들은 이내 잠잠해지고 말 텐 데... 대지의 퉁소소리는 사나운 바람이 언제 일었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면서 산들바람에 의해 나뭇가지만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는 여유도 보여주는데. 우리들은 이런 빈 마음(허심虛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인지 바로 이것이 제물론을 시작하는 장자의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