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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법문 9월16일-광타원 교감님 설법- 과거 현재 미래 삼세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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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상덕 조회 1,552회 작성일 2012-09-1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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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삼세명감 - 원기93년 7월 6일 정례법회

그 사람의 전생사를 알고 싶으면, 현세를 보면 되고, 현재 사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수 있다.고 대종사님이 말씀해 주셨다.

현재 지금 법회를 보고 있지만, 이시간이 지나면 이 시간은 과거가 된다.

전생, 현생, 래생으로 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로 봐라고 대산상사님이 말씀하심.

과거라는 것은 털고, 잊어버리고, 현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대산상사님은 과거를 강조를 하셨다.

과거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기억해야 하는 것과, 그냥 잊어버려야 할 과거가 있다. 과거 있었던 잘잘못을 보감삼아서 하는 것과, 잊어버려야 할 과거가 있다.

물의 원천은 항상 물을 맑힌 물이고, 물이 솟아서 물을 맑힌다. 그러나, 그러한 원천적인 물도 물이 흘러버리거나, 써버리지 않으면, 그 원천의 물도 같이 썩게 된다.

과거를 기억해서 현실에 응용해야 되는데, 과거를 전무 싹둑 잘라버리고 현재만 보면 문제해결이 안되게 되어있다.

초등학교 모임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초등학교 등에 대한 과거의 생각이 거의 없는데 60먹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모임을 하자고 하니, 아마 이제 조금씩 할 일들이 없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초등학교때에도 계룡산을 보고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 또 소풍가서도 절에 가서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내가 과거사에 있었던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요없는 어제 일은 생각지도 하지말고, 좋은 과거에 대한 생각들은 현실을 생각들은 간직하라고 대산상사님이 강조하곤 하셨다. 과거의 습관이 그대로 현재에서 나타난 것을 나 스스로가 느낀다. 과거가 그냥 흘러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발현되어 또 다시 미래로 나아간다. 마치 돌고도는 것과 같다.

함석헌의 “뜻으로 보는 한국사”에 ~했더라면... 이라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 소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부분에서는 흘려버려야 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의 신진대사도 먹고, 배설하고, 자고 깨어나고 등등 이것도 공이면서 채우고,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이다. 수도자들도 현실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공으로 가고, 또 공으로 가서 다시 현실로 나아오는 과정이다. 공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직 현실에만 끌리면 그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회귀본능처럼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를 잘해야 한다. 그래야 묘유가 잘 작동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계속 반복된다.

시간의 걸음 걸이는 세가지

미래는 주저하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현재는 화살처럼 지나간다.

과거는 영원히 잠자고 있다.

현재

현재는 극복의 대상이다. 순간순간 현실, 현재를 살아가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는 나를 만들어가는 그 구성체 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대종사님께서 아홉분의 제자와 함께 기도를 드리면서 “공을 위해 죽어라”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이 바로 공익심이라 생각된다. 나의 생각이 한 생각도 없이 타인을 위한 생각이다.

늘 남을 생각하면 나에게 상극이 있을 수 없다. 사 없는 나가 항상 공을 위한 마음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사가 없는 것은 가 있는 마음은 상극을 불러온다.

세 가지 보시 : 물질, 법, 무애보시 : 두려움이 없는 보시로써 나를 보면 항상 의지하고, 와서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보시. 무애보시란 곧 공익심이다.

대종사님께서 그래서 창생을 위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과 죽음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깡촌 시골에서도 공익을 위해 한 생을 마칠 마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제자들이 모여서 대종사님의 생활이 좀더 나아지기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는것을 보고, 대종사님은 탄식을 하셨다. 공을 사에 이용하려는 것을 보시고 탄식을 하셨다.

내가 할수있는한 조그마한 것이라도 남에게 주고, 덕있는 마음을 갖추어서, 나를 만나면 항상 부드럽고, 포근한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것이 바로 무애시이다.

대부분은 항상 모든 생각이 바로 ‘나’로 시작된다. 나, 내 가족..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늘 나와 대척하는 상대가 나오게 되어있다. 그래서 결국 상극에 부딪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를 살펴보라. 남을 위한 마음으로보면 내가 해야할 일이 많아진다. 하루에 눈을 뜰때 오직 나를 위해 살겠다는 생각에서 좀 벗어나 보라. 현재를 어떠한 마음으로 살 것인가를 하면 미래는 당연히 보장되게 되어있다.

맑은 동심이지만, 어린이들도 남을 위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기도 하다.

어린이 집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이 갑자기 배가 아파 한 학생에게 약국에서 약을 사오라 하니, 그 어린이가 가기 싫어서 갑자기 자기도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미래는 준비이다.

교당도 준비해야 나오게 된다. 하루일정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영생을 살아가는데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생사에 대한 연마가 필요하다. 이치를 모르면 늘 나만 당하고 사는 것 같이 느낀다. 그러나, 생사를 잘 연마해 보면 늘 나에게 무엇인가 교훈을 주기 위해 그러한 일들이 있다. 항상 외롭고, 억울하고, 나만 당하는 생각이 들면 안된다.

금강경의 끝부분에 과거심도 불가득, 현재심도 불가득, 미래심도 불가득이다.

정해 놓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공이다는 것이다.

금강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상을 없애라, 착을 없애라 등등이다.

찰라 전은 과거고, 찰라는 현재고, 찰라후는 미래이다. 대상상사님 법문

삼세를 생각하지 않고, 현세에만 집착하면 공과 체가 원활하지 못해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