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후 글쓰기 버튼이 나타납니다. 이용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질문 73: 원불교에서 수행을 촉진하기 위해서 어떤 믿음(信)을 필요로 하나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 1,886회 작성일 2010-12-31 17:40본문
대답: 원불교에는 수행에는 수행을 촉진하는 진행사조와 방해하는 사연 사조를 합하여 팔조가 있습니다. 진행 사조에는 믿음을 의미하는 "신", 분발심을 불러일으키는 "분",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려는 의문을 발하는 "의",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실천하는 "성"이 있고 사연 사조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불신", 과분한 욕심을 발하는 "탐욕", 매사에 의욕이 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나",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우"가 있습니다.
물론 붓다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기 위해서는 신(信)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행법에서 신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원불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불교의 선가귀감에서는 참선의 세 가지 요건을 신심(信心), 분심(憤心), 그리고 의심(疑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씨가 갊아 있다는 여래장의 믿음입니다.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수행에 있어서 성공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공신앙 없이 선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마음만 급할 뿐이지, 앉아서 좌선을 익히나 바른 공부에 들어가기 어려울뿐더러 일상적인 신체의 리듬도 깨지게 됩니다. 마침내는 參禪이란 말만 들어도 골이 아프고 눈에는 충혈 된 현상도 일어나는 참선은 고행이라는 경험만 남겨두게 됩니다.
성공신앙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원불교는 부처와 인간이 둘이 아닌 불인불이(佛人不二)의 신앙이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조단경을 통해서 6조 혜능대사와 신수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홍인대사가 제자들에게 게송을 지은 자에게 법을 전하겠다고 하니 7백 대중의 상좌인 신수(神秀)스님이 이런 게송을 벽에 적었습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라네.
수시로 부지런히 닦아서 먼지 끼지 않도록 하세.” 이것을 본 혜능은 게송을 짓기를 “ 깨달음은 본시 나무가 아니오 마음 또한 거울이 아니라네 본래 한 물건조차 없는데 무슨 티끌을 털어낼 것인가?” 그날 밤 홍인 대사가 남몰래 혜능을 불러 말했다.
"정법안장을 이 밤 그대에게 전한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이미 우리는 부처인데 스스로가 부처인 줄을 모르고 중생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에 부처의 본연으로 돌아가서 부처의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원불교의 정산종사는 인간이나 부처나 다 같은 부처인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자신이 부처인줄을 아는 정화신불, 인간과 같이 자기가 부처인 줄을 모르는 중생을 편화신불로 구분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붓다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기 위해서는 신(信)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행법에서 신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원불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불교의 선가귀감에서는 참선의 세 가지 요건을 신심(信心), 분심(憤心), 그리고 의심(疑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의 씨가 갊아 있다는 여래장의 믿음입니다.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수행에 있어서 성공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공신앙 없이 선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마음만 급할 뿐이지, 앉아서 좌선을 익히나 바른 공부에 들어가기 어려울뿐더러 일상적인 신체의 리듬도 깨지게 됩니다. 마침내는 參禪이란 말만 들어도 골이 아프고 눈에는 충혈 된 현상도 일어나는 참선은 고행이라는 경험만 남겨두게 됩니다.
성공신앙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원불교는 부처와 인간이 둘이 아닌 불인불이(佛人不二)의 신앙이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조단경을 통해서 6조 혜능대사와 신수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홍인대사가 제자들에게 게송을 지은 자에게 법을 전하겠다고 하니 7백 대중의 상좌인 신수(神秀)스님이 이런 게송을 벽에 적었습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라네.
수시로 부지런히 닦아서 먼지 끼지 않도록 하세.” 이것을 본 혜능은 게송을 짓기를 “ 깨달음은 본시 나무가 아니오 마음 또한 거울이 아니라네 본래 한 물건조차 없는데 무슨 티끌을 털어낼 것인가?” 그날 밤 홍인 대사가 남몰래 혜능을 불러 말했다.
"정법안장을 이 밤 그대에게 전한다. 나의 게송을 들으라."
이미 우리는 부처인데 스스로가 부처인 줄을 모르고 중생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에 부처의 본연으로 돌아가서 부처의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원불교의 정산종사는 인간이나 부처나 다 같은 부처인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자신이 부처인줄을 아는 정화신불, 인간과 같이 자기가 부처인 줄을 모르는 중생을 편화신불로 구분하고 계신 것입니다.
- 이전글질문 74: 선정에서 수행을 해야 하는 데 왜 忿心이 필요한가요? 10.12.31
- 다음글질문 72: 원불교의 작업 취사와 불교의 계(戒)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10.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