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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42: 얼마쯤 원불교에 기증하면 공덕이 있다고 평가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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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진 조회 1,238회 작성일 2010-12-31 17:22

본문

대답: 아무리 기증을 해도 공덕은 없습니다. 얼마쯤 기증해야 공덕이 있다고 평가되느냐는  질문을 하는 순간에 공덕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무제가 달마를 불러 만난 곳은 양나라 수도 금릉(金陵·현 난징)이었습니다. 황궁이 아니라 무제 자신이 감독하여 527년에 지은 동태사(同泰寺·현 계명사)에서 만났습니다. 동태사는 무제가 며칠씩 머무르곤 했던 행궁(行宮)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양무제는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蕭昻)의 안내를 받고 온 달마를 보자마자 물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소개하고, 중에게 도첩을 내린 것이 셀 수 없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실제로 양무제는 504년 초파일을 기해 도속(道俗) 2만명을 이끌고 황궁에서 도교를 버리고 불교를 믿는 사도봉불(捨道奉佛) 의식을 거행했고, 511년에는 술과 고기를 금하는 단주육문(斷酒肉文)을 공표하였으며, 517년에는 제사를 위해 산 것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케 했다. 또한 나라 안에 도관을 폐하고 도사들을 환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공(誌公) 같은 고승을 왕사로 예우하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수많은 승려와 백성이 법문과 음식을 공양 받는 무차(無差)대회를 열었고, 그 자신이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강의함은 물론 ‘오경의주(五經義注)’ 200여권을 비롯해 많은 저술을 남겼던 것입니다. 황제가 이러하니 양나라에는 사찰이 2800개나 번창했고, 승려는 8만2000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달마의 대답은 양무제를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전혀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오?', 속에 아무 성스러울 것도 없는 커다란 공입니다. 그러면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공덕을 생각하고 기증을 한다면 이것을 원불교에서는 유상보시라고 하는 데 그것은 복은 될지언정 공덕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보시는 무상 보시(주었다는 상을 갖지 않는 보시)가 보시이며 유상보시가 될 경우  그것이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무상보시와 유상 보시의 차이를 저희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변의품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변의품(辨疑品) 28장에 보면 한 제자 여쭙기를 「유상 보시(有相布施)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시를 하는 것이 비하건대 과수에 거름을 하는 것과 같나니 유상 보시는 거름을 위에다가 흩어 주는 것 같고 무상 보시는 거름을 한 후에 묻어 주는 것 같나니라. 위에다가 흩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흩어지기 쉬운 것이요, 묻어 준 거름은 그 기운이 오래가고 든든하나니, 유상 보시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하시며 유상보시와 무상 보시의 공덕의 차이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원조를 퍼주기식으로 했다는 등 엄청난 원조를 했다고 하는 데 북한에서는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러한 무상보시의 진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퍼주기식으로 쌀을 주고 비료를 주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주었다면 북한이 고마워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진실로 민족화해의 입장에서 준 무상보시만이 북한을 감동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