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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치유 - 15단 배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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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304회 작성일 2018-01-0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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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치유 - 15단 배정혜 교도

 수년 전, 전철을 타고 가다가 겪은 일이다. 어떤 아저씨가 앞에 서 있는 흑인 남자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기분 나쁘게 왜 똑바로 쳐다보냐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 흑인은 당황했던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 인지라, 전철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외면하거나 침묵하고 있었다. 비겁한 침묵에 나도 편승하고 말았다. 그 일을 겪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흑인 외국인을 돕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기회가 되어 고려대 김승섭 교수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사회적 상처는 우리 몸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란 주제의 강의를 들은 후, 질의 시간에 불편한 나의 진실을 말씀 드리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대처 능력도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사람마다 누구나 마음속에 알지 못하는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말하지 못한 상처도 몸은 기억 한다”면서 “사회적 차별 경험이 어떻게 우리 몸에 스미게 되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알아야한다”고 하셨다. 강의를 통해, 원인을 알게 된 나는 치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 한복판에서 남학생 한명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관광버스에 치여 네거리의 4차선 도로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출근시간대라 버스차선도 전부 막히고, 정지 된 화면처럼 적막이 이어졌다. 그 순간, 수녀님 세분이 남자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잠들면 안된다. 집이 어디냐? 전화번호가 뭐니?”하고 묻는데도, 학생이 대답이 없자, “누가 신고 좀 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나는 미처 신고할 생각을 못하고 ‘저 학생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 보니 분명 죽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수녀님 한 분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신고하라고 해도 출근길 시민들은 무표정으로 침묵했다. 나는 돌연히 정신을 차려, 나를 힘들게 했던 비겁한 침묵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119와 112에 신고를 했다. 차가운 도로 바닥에 누워있는 그 학생에게 내 코트를 덮어주었다. 관광버스 기사는 “아침부터 재수 없다”며 보험회사에 신고하고 나서, 수녀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나서서 일이 더 복잡하게 됐다”고 화를 냈다. 그런데 정류장에 있던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수녀님들이 곤경에 처한 그 순간에도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수녀님에게 욕하지 마세요!” 라고 소리 쳤더니, 관광버스 기사가 수그러들었고, 구급차와 경찰차가 와서 아이는 응급실로 이송되고, 사고 조사를 하면서 번잡한 도로는 정리가 됐다. 수녀님 세분이 동시에 나에게 뛰어 오더니 “우리 자매님 맞으시죠? 저희는 지금 봉사활동 가는 중이랍니다”며 환한 미소로 반기셨다. “수녀님 저는 원불교 교도입니다.” 나의 답변에 수녀님들이 놀라셨다.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 신도들이 없었겠느냐?” 그런데 우리가 욕을 먹고 있는데도 단 한명도 나서지 않고 어찌 원불교 교도가 나섰냐“고 하시면서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중년의 여자분이 전화를 통해, 본인은 그 날 사고 난 학생의 엄마라며, 말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나도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자신은 독실한 천주교인이라고 하면서, 그 날 아들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수녀님들이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덕분에 아이가 살아났다고 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이 학교를 빨리 가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였는데, 다행히 목숨은 살아 있고 6개월 정도 입원 치료를 해야 된다고 했다. 수녀님들이 경찰서에 최초 신고한 나를 찾아낸 후, 사고 난 아이의 어머니에게 “원불교 교도라는 그 분께 꼭 감사의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며, 감사의 인사하러 온다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전철 안, 흑인 남성의 일이 회상되면 연관된 생각, 느낌,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감정회피는 불편한 기억을 차단하기 위해 장기기억 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싶어한다. 함께 고민하는 차별과 인권의 아픔을 나누는 강의를 들은 후 내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 이 일로 인해 그 흑인 남성을 도와주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게 된, 이 모두가 대도정법 회상인 원불교를 만나, 마음공부를 진솔하게 한 은혜라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