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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법회 - 5단 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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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392회 작성일 2017-07-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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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법회 - 5단 김윤성

 교감님이 직접 수요법회를 주관하심은 교감님의 자비심이시다.
 앞으로 매달 마지막 주에 선법회를 하시기로 하고 이번주 수요법회에 처음으로 열으셨다.
 처음엔 예고하시지 않은 일이라 당황했지만 따라하면서 점점 적응이 되었다.

 일요법회에 선법회가 선체조와 15~20분 좌선 후에 의두요목을 한다면 20여명이 둘러 앉아
지도교무님을 두고 구심전수의 맞춤옷을 입는 형식을 취한다. 선 음악을 조용히 은은하게 흐르게 하면서
일방적 전달이 아니고 문답식이며 쌍방향으로 진행된다. 좌선 후에 돌아가며 일일이 어떻게 느꼈는지
말한다. 평소의 일요법회에서 하지 못했던 본인의 사리연구를 발표해도 된다.

 자기발표시간에 맞추어 교도들이 다 들어주시고 격려도 하고 더 묻기도 하고 많은 숨겨진 공부를 했지만 검증 받을 수 없을 때 수요법회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교감님과 교도 앞에서 선법회에 앞서 열반 할 때 ‘온전한 생각에 그치라’는 어떤 것인가 발표 해보라 하신다. 상시응용주의 사항 1조에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라’와는 어떻게 다른가?
예화를 드신 후 온전한 생각으로 그친다는 이 상황에선 어떠한 것인가? 완전히 case study다.
법조계의 판례 연구며 의료계의 증례 보고다. 원남 수요법회는 원불교판 야단법석이며 format의 새로운 제안이다. 수요법회는 생동감이다. 뒤에 앉아서 고개 숙이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하며 기다리면 안된다.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으므로 1:1로 교감님과 마주 앉아 문답하는 개인 레슨의 효과가 있다.
보통급이든 법사위든 일단 질문이 떨어지면 내용을 표현해야 된다. 따로 단장도 없고 단원도 없고 법위등급도 없고 스승과 제자만 있다. 스승으로부터 현장에서 감정을 그 자리에서 받든다.

노트제출 하여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현장(sur place)에서 즉답으로 나온다. 질문을 하고 solution을 찾는 창의적인 법회다. 그 동안 뭉뚱그린 생각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것이 다른 교도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사발 그릇을 뒤집어 놓고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싸인 하듯이 둘러 앉으니 참가자 모두가 자리에서부터 평등하다. 누가 책임자이고 누가 실행자인지 구분이 없다. 모두가 임원이고 모두가 직원이다.

법장사로 치면 기획·생산·마케팅이 동시에 일어난다. 교감님과 교도들의 질의응답을 통해서 내용이 심화교육으로 이루어진다. Basic과 Intermediate코스를 훑어 주시고 Advanced코스로 진입하신다 하루만에. 교감님의 사전에 철저한 예화 준비로 가능하다. 일요법회에선 연마를 실천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경상공부는 책상공부와 달리 앉은 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므로 친근감과 교정받기가 편하다.

직접 노트를 고쳐주는 것 같이 아이들의 밥상머리 공부와 같다. 실제로 수요법회에 쓰는 경상은 일요법회 후 사용하는 밥상이다. 다행히 원남밴드와 카톡이라는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소리에서 문자로 새로운 소통의 수단이 교화를 남녀·노소·출석자와 결석자, 서울과 지방의 교도들, 일요법회와 수요법회의 간격과 차이를 하나로 만들어준다. 소위 인터넷 교화가 확장된 법회를 이끌어 준다.

생산직에 힘쓰는 연령이나 몸이 불편한 경우를 제외한 정년 퇴직자들에게 돌아오는 여유의 혜택이
오히려 환상의 제2의 인생을 풍요롭게 꿈꾸는 수요법회가  아닌가 한다.
매달 4째주마다 선법회 갖기전에  선요가를 익히면 더욱 효율성 있는 선법회가 될것 같다.
집단교육에서 하는 보여주기 식의 demonstration용이 아니라

교도 하나 하나에 심어주는 체화된 선요가인 첫  선법회에 보여주신 나비좌선(나비pause)은 누구나 습득이
가능한것 아닌가

물론 저는 양 무릎이 바닥에 밀착 되지 않지만. 교감님은 나비죄선으로 고질의 등통증이 낫지 않으셨나.
등이 하두 아파서 등에다 쑥뜸이며 두들김이며 별짓(?)을 다해도 안 나았던 등통증이 없어짐과 동시에
견비통도 낫고 더 나아가 선요가가 머리 두정부를 통해서 환한 지혜가 솟아나면
백미를 이루신다고 하시지만ᆢ.

사실 수요법회는 이전에는 수요공부방이었다. 일요법회에서 갈라 나온 것처럼. 일요법회의 산하 법회처럼.
밤에 공부하는 야간법회같이 출석은 인정되지만 교도로서 낮에 쉴 때 일요일날 떳떳하게 나오는
일요법회가 교도로서는 main pathway를 걷는다면 수요법회는 평일날 저녁에 땜질하듯 하는 공부같이 교도로서 이때까지 accessary pathway를 걷고 있었다.

첫 수요 선법회의 공부를 예로 들여다보면 지금 염불중에 새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새소리가 운다고 하지 않고 새소리가 들리니까 들릴 뿐. 이런다 저런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이 “소리에 깨어 있다”고한다. 이런 상태가 온전한 상태에 그쳐 있다 이다. 염불과 독경 할 때만 [소리선]을 할 수는 없다.

소리에 깨어 있는 연습은 나무아미타불만 염불소리가 아니고 저 새소리, 일체소리가 염불소리가 되어야 한다. 새 소리도 염불소리가 되고 나를 갖고 누가 시비를 했으면 마음이 그 소릴 듣고 온전한 생각으로 그치며 평가가 칭찬이든 비판이든 좋은 소리나 싫은 소리가 아니고 그 소리도
일체소리를 염불소리로 들을 때 ‘<관세음보살>소리에 각성’한다고 한다. 이런 구체적이고 자세한 공부는 토론과 문답이 수월한 수요법회만이 가능하다. 일요법회같이 연단을 이용하고 격식차린 대중 앞에서의 경강은 짧고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명료한 문장이 적절하다.

일요법회에서 정전을 경강으로 91쪽까지 마친적이 있다. 1년에 52번을 3년동안 대략 156회로 치면 한 주에 1~2쪽을 나가신거다. 천도품 한품을 집중적으로 꿰뚫거나 금강경을 통관하는 공부는 일요 법회에선 평생을 다녀도 못한다. 경전공부의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공부가 수요법회다.

두 법회가 서로 상호보완의 기능을 가졌다. 일요법회에서 뻗어나와 보조역할을 하던 수요공부방이 이제는 수요법회로 홀로 서서 일요법회를 충분히 cover하고도 남음이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두 법회의 원남밴드와 카톡을 통한 실사중계로 수요법회를 일요법회처럼 일요법회를 수요법회같이 교화가 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것은 순전히 교감님의 열정과 관심, 자비심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