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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단상 - 8단 이정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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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460회 작성일 2017-03-11 10:43

본문

나는 유년과 소녀시절을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일본 문학을 익혔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로만 공부했다. 일본은 조선인이 황국신민이 되도록
 강압적으로 쇠뇌교육을 시켰다. 나와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본의 아니게 암암리에 일본화 되어가고 있었다.
 제국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전시훈련과 근로 작업이 계속되었고 청년들은 지원병으로
 장년은 근로보국대로 소녀들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군인 위안부로 끌려갔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지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裕仁(히로히도)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남조선을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겠단다.
 우리 학생들은 “신탁통치 절대반대”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고 또 6.25 동란이 일어났다.
 
  나는 이때 사천에서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사천에는 비행장과 군사기지가 있다.
 인민군이 따발총을 메고 남으로 진격해 내려왔다. 미군 폭격기가 사천시 내를 폭격하여
 사천읍내는 쑥대밭이 되었고 전쟁의 상처는 참혹했다. 우리 가족은 겨우 목숨만 건졌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서 구호물자와 건축자재가 들어와서 무너진 집터에 집을 짓고 어려움을 겪어냈다.
 
  나는 부산에 있는 동신국민학교로 전근이 되었다. 가서보니 학교에는 국군이 주둔하여
 육군병참학교가 되어있고 수 천 명의 학생들이 구덕산 기슭에 가교사를 짓고 공부하고 있었다.
 담임교사만 60명, 교장, 교감, 교무, 양호교사가 모두 전임이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의 대학들이 모두 부산에 피난 와 있었고 부산은 피난민이 넘쳐났다.

  상경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고 원남교당에 오게 되었다. 향타원 교감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셨다.
 선진님들 덕행을 거울삼아 도반님들과 손에 손 잡고 교리공부하며 때로는 성지순례로 또는 훈련도 나고
 한국보육원, 번동복지관 봉사활동, 봄가을 바자회로 심혈 기울이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교당 분위기에 훈증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수행의 바다에 반야용선 띄우고 해탈의 희망봉을 향하여 쉼 없이 노 저어간다. 피안에 다다르면 반야용선 내려놓고 법의 울타리 뛰어 넘어 무한자유를 얻을는지?
 
  삶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