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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00년 6월 28일. 선법회 전산 박덕희 교무 설교-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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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1,458회 작성일 2015-06-29 13:07

본문

<설교영상이 녹화되지 않은 관계로 설교안을 올립니다. 양해 바랍니다.>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니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 이라 하시니라. <대종경, 성리품 1장>

100.6.28. 선법회

반갑습니다. 지난 달 까지 의두요목 공부가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죠. 해의, 해석이 아닌 우리 삶에 의두와 성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고민을 좀 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적공실부터 다시 할까?’ 그런데 공부란 것이 끝내는 맛이 있고,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하는 기대와 설레임이 있죠. 그래서 선법회와 어울리는 ‘성리품’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어떠세요. 교도님들. 괜찮으시겠어요?
자,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내용은 <성리품 1장>입니다. 이 법문은 깨달음의 달 4월에 공부하는 것이 제격이겠지만,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6월에도 제법 어울릴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보면,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니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시니라.  “맑은 바람 불어 달 떠오를 때, 모든 것들이 자연히 밝아지더라.” 바람과 달과 만상이 주인공이 되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대각의 세 가지 트랙
먼저 대각과 관련하여 세 가지 트랙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대각의 내용이고, 둘째는 대각의 과정이고, 셋째는 대각한 심경입니다.
먼저 대각의 내용은 <대종경 서품 1장>에 잘 밝혀져 있죠. “대종사(大宗師)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무엇을 깨달았느냐? 한 마디로 말하면 일원상의 진리를 깨쳤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대각의 과정입니다.
<원불교교사>를 보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의 과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회보 1면에 나와 있는데요. 함께 읽어보실까요?
“원기 원년(1916·丙辰) 음 3월 26일 이른 새벽에, 대종사, 묵연히 앉으셨더니, 우연히 정신이 쇄락해 지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있으므로, 이상히 여기시어 밖에 나와 사면을 살펴보시니, 천기가 심히 청랑하고 별과 별이 교교(皎皎)하였다. 이에, 맑은 공기를 호흡하시며 뜰 앞을 두루 배회하시더니, 문득 이 생각 저 생각이 마음에 나타나, 그동안 지내 온 바가 모두 고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며, 고생을 면하기로 하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며, 날이 밝으면 우선 머리도 빗고 손톱도 자르고 세수도 하리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날이 밝으매, 대종사, 먼저 청결하는 기구들을 찾으시는지라, 이를 본 가족들은 대종사의 의외 행동에 한 편 놀라고 한 편 기뻐하여 그 동작을 주시하였으니, 이것이 곧 대종사 출정(出定)의 초보이었다.”

사실 이 내용은 대각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대각 당일의 상황설명에 가깝습니다. 교사에 나타난 대각의 과정은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발심, 구도, 입정, 대각의 순서를 띠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대각한 심경입니다.
큰 깨달음을 얻을 때의 심경은 어떠할까? 짜릿한 전율일까, 용솟음치는 듯한 기분일까, 은은한 자연스러움일까? 자, 어떤 느낌, 어떤 심경일 것 같습니까?“맑은 바람 불어 달 떠오를 때, 모든 것들이 자연히 밝아지더라.” 생각만 해도 참 멋지고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이 표현은 대각을 시적으로,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각은 태풍이 아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고, 태양과 같은 강렬한 빛이 아니라 은은한 달빛이고, 한꺼번에 뒤엎어지는 변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저는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이라는 이 표현을 보고, 이것은 대각의 심경이라기 보다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은 크게 원인과 결과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맑은 바람 불어 달이 떠올랐기 때문에 만상이 자연히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또 ‘청풍월상시’, 그 내용만 보더라도 맑은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달이 떠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심경’이라는 단어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대각의 심경이란 깨달음을 성취했을 때의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자,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셨을 때 어떠한 마음의 상태였을까요? 과거에 모르던 것이 걸림 없이 다 알게 된다면 어떠한 심경일까요? 그런 점에서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이라는 표현은 너무 시적이고 은유적으로 느껴집니다. 멋과 아름다움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사실성과는 좀 멀지않나 싶습니다.

20여년의 구도과정을 거쳐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심경이 어떠했을까요? 그 기분은 어떠할까요? 한마디로 하늘을 날을 듯한, 세상을 전부 가진 듯한, 좋아서 펄쩍 뛰고 싶은 그러한 심경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의 심경, 기분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종경선외록』 ‘초도이적장’ 2절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대종사님은 득도한 이후 그 심경을 ‘심독희자부(心獨喜自負)’라고 했습니다. ‘심독희자부’란 홀로 마음속으로 기뻐하고 스스로 인정하며 자긍심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그러시면서 그 기쁨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해 겨울 범현동(帆縣洞)에 있을 때에는 생사 고락 그 이치며 우주 만물 그 이치를 억만 사람 많은 중에 내가 어찌 알았는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흥이 나서 하룻밤을 흥타령으로 앉아 세우고, 이른 새벽 눈은 한 척 높이로 쌓였는데, 굽 나막신을 신은 채 뒷산에 올라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돌아왔으되 신발에 눈 한 점 묻어 있지 않은 일도 있었다.”

얼마나 대각의 기쁨이 크셨으면 흥이 나서 하룻밤을 흥타령으로 앉아 세우셨을까요? 얼마나 대각의 기쁨이 크셨으면 이른 새벽에 나막신을 신고 눈 덮힌 뒷산을 사방으로 돌아다니셨을까요? 깨달은 자가 아니면 그 심경을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바람을 불릴 것인가?
청풍, 맑은 바람이라고 했죠. 바람은 자연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만약 바람이 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바람은 구름을 이동시켜 비를 내리게도 하고, 적당이 바람이 불어주어야 대기가 순환이 되고 땅을 식히거나, 너무 얼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부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따뜻한 기운은 위로 오르고, 차가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는 게 자연의 이치이죠. 따뜻한 기운이 위로 오르고 그 빈 자리에 차가운 기운이 이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람입니다.

그런데 자연의 바람 말고 내 안에서 불리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청풍, 맑은 바람입니다. 청풍은 폭풍우처럼 휘날리는 바람이 아니라 맑은 고요에서 불어오는 바람, 안에서 일어나는 바람입니다. 마치 맑은 날 서쪽에서 불어오는 서늘하고 건조한 하늬바람과 같습니다. 
내 몸 안에는 천지의 기운이 있습니다. 음과 양의 조화로운 기운이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에 의해 내 몸과 마음에 가리어져 있는 흑운이 걷히게 됩니다. 검은 구름이 걷히면 자연이 떠오른 달 하나가 있습니다. 달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그대로 드러날 뿐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있을 때는 여름방학 시작하자마자 학생들과 지리산 등반을 했습니다. 한번은 비가 오는 날 등반을 했는데요. 장터목 산장에서 비가 갠 뒤에 지리산 전체가 운무로 뒤덥힌 장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남해바다에 떠 있는 무수한 섬처럼 지리산이 구름의 바다를 이룬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바람이 불면 그 운무가 어느 순간 걷혀 버립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이죠. 운무가 걷히면 산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계곡이 보이고 산 아래 동네까지 환하게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구름이 걷혀버리면 어느 순간 만상이 제 모습 그대로 드러나는 ‘만상자연명’의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맑은 바람, 청풍을 어떻게 불릴 수 있을까요? 선정(禪定)을 통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깊은 고요에서 일렁이는 바람이 바로 청풍입니다. 청풍이 무엇인지 좌선을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좌선은 우리 몸에 있어 수승화강(水昇火降), 물기운을 위로 올리고, 불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어서는 식망현진(息妄顯眞),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게 하는 것입니다. 물기운이 오른다는 것은 청풍, 맑은 바람을 일게 하는 것입니다. 맑은 바람이 불면 자연히 진성, 밝은 달이 나타나는 것이죠.

수승화강이 잘 되면 머리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깊은 고요를 지나 맑은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밝은 달, 지혜의 달, 심월이 떠오릅니다. 그 마음달은 바로 맑고 깨끗하고 밝게 빛나는 우리의 자성이죠. 그 자성의 빛으로 볼 때, 어느 것에도 걸림없이 만상이 그 모습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태풍이죠. 교도님들! ‘태풍의 눈’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태풍은 안쪽으로 갈수록 풍속이 증가하나 중심에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를 태풍의 눈이라고 하죠. 저는 태풍의 눈이 진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대각과 연결시켜보면, 태풍 안에는 맑고 고요한 태풍의 눈이 있듯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진리의 큰 깨달음에는 맑고 고요한 진공, 대입정(大入定)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죠.

월상시: 달 떠오르다.
일반적으로 달은 은은함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묵객들의 주요소재가 달이었죠. 해가 남성이라면 달은 여성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매우 서정적인 느낌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달의 이미지가 <성리품1장>에서는 깨달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달은 심월, 마음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휘영청 뜬 달이 아니라, 월상시 ‘달 떠오를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마음 달이 환히 떠오르는 것이고, 그러한 달빛을 본다는 것은 그 달을 가리는 구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전에 구름이 있었다 하더라도 맑은 바람이 불어 그 구름을 걷어갔을 것입니다.

저는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이 내용을 연마하면서 이런 의문이 계속 남았습니다. ‘달이 만상을 제대로 비춰줄까?’ ‘달이 떠오르면 만상, 일체의 것들이 자연히 밝아질까?’ 현실적으로 보면 달빛이 그리 밝은 빛은 아닙니다. 정월 대보름달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좀 밝게 보이겠죠. 아무리 깨달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하더라도 좀 더 깊은 뜻은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 생각에 큰 변화를 준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6월 16일 남산 서울클럽에서 원불교 문화사업회 주최로 ‘원문화의 밤’이 있었는데요. 거기에 중앙일보 회장이신 원산 홍석현 회장께서 특강을 하셨습니다. 원산 회장님의 강연중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마디로 저에게 필이 팍 꽂혔습니다. ‘월인천강지곡’은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 화신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마치 달이 하나이지만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수많은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원산 홍석현 회장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전해주신 달을 우리 각자는 품고 있습니다. 각자가 품고 있는 달이 이웃인 일천강에 어떻게 잘 비춰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참 멋지지 않나요?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대종사님의 깨달음의 빛이 우리 각자의 마음달을 밝혀주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또 하나의 달이 되어 천개의 강을 비춰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천개의 달이 되고 천개의 강에 비춰나가면 일체만물은 자연히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만상자연명은 하나의 달빛이 만상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만상 스스로가 달이 되어 스스로 밝아지는 것입니다. 만상의 본래 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달빛이 되고 부처가 되는 세상이 바로 화엄의 세계이고, 미륵불세상 입니다. 

원불교성가 107장 ‘심월송(心月頌)’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 허공에 밝은 달은 다만 한낱 원체로되 일천강에 당하오면 일천 낱이 나타나고, 나의 성품 밝은 맘도 또한 한낱 원체로도 일만경계 당하오면 일만 낱이 나타나네.”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그 달을 일만경계를 당해서는 일만개의 달로 나타나라는 것입니다. 경계를 당해서 불리자성하라. 자성의 빛을 떠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 일만 경계가 다 은혜의 꽃을 피워내라는 것입니다.

마무리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심경으로 살아야 할까요? 매일 매일 대각의 심경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 기쁘고 시원한 심경, 확 트인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어떤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맑은 바람, 훈훈한 바람, 은혜의 바람을 일으키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도 이런 바람이 많이 불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밝은 달이 휘영청 뜨고 세상이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깨달음은 기쁨입니다. 깨달음은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그 달을 더욱 빛나게 해서 천개의 강에 비추는 새로운 달이 되어야 합니다. 슬픔이 있는 자를 위로하고, 고통이 있는 자를 치유하고, 쓰러진 자를 일으켜주고, 약한자를 안아주고 그들에게 힘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와 은혜의 손길로 미쳐가야 합니다.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맑은 바람 불어 달 떠오를 때 만상이 자연히 밝더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