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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1-28 21:36
원기 98년 1월 27일 박덕희 교무님 설교_정법정신(正法正信)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966  
   정법정신-교당홈피용.hwp (23.5K) [0] DATE : 2013-01-28 21:36:51
새로 부임하신 박덕희 교무님의 설교 동영상입니다.

[무선 마이크 송신의 문제로 카메라에 있는 마이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소 음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초반부에 주변의 소음이 들리고 마이크 및 카메라 조정시 화면이 조금 흔들리는 현상도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으시는 데 큰 불편함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설교하신 전체 내용을 글로 옮겨 두었고 원본 파일을 첨부하였습니다. 파일을 열어 보시면 큰 글씨로 보실 수 있어 읽으시는 데 더 편리합니다.]





인사 및 대학교 교훈
반갑습니다. 어느 선배 교무님이, 서울교구로 새로 부임한 교무님들은 서울 멀미를 한다고 그러데요. 저는 다행히 서울멀미, 교당멀미 같은 건 하지 않고 잘 적응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마치 원남교당에 살았던 사람처럼 제 딴에는 큰 무리없이 기쁘게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교도님들께서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고 밝은 미소, 좋은 기운을 보내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말씀 드립니다.
오늘 저의 설교제목은 ‘정법정신(正法正信)’입니다. 교도님들! 제가 원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근무하다 온 거, 다들 아시죠. 학교에는 교훈이라는 것이 있는데, 저희 대학원의 교훈이 뭐냐 하면 “정법정신 정진적공 제생의세”였습니다. 학교를 개교하면서 당시 좌산 종법사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교훈입니다.
원래 이 정법정신 이라는 말은 원불교 3대 종법사님이셨던 대산종사께서 법위등급중 특신급의 핵심을 ‘정법정신’이라 해설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교도님들의 법위가 대부분 특신급 이상이실텐데요. 제가 교도님들의 공부정도를 낮게 잡아서가 아니라 원불교 신앙인이라면, 원불교 공부인이라면 ‘정법정신’이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하기 때문에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왜 대학원 교훈의 첫 번째가 ‘정법정신’일까? 또, 대산종사께서는 대각여래위가 높은 자리이나 정신(正信), 바른 믿음이 서질 때에 이미 허공법계에서는 성성식(成聖式)이 이루어지고, 이 법에 죽자하고 꽉 정하는 것이 특신인 동시에 여래(如來)의 바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인이 되고, 여래의 바탕이 된다. ‘정법정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불교에서도 초발심이 곧 정각을 이룬다는 ‘초발심시 변증각’이란 말이 있습니다.

정법정신에서 正이 갖는 의미
정법, 바른 법. 정신, 바른 믿음이죠. 그런데 이 정법정신은 정법과 정신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정법을 정신한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 될 것입니다. 정법을 바르게 믿는다. 정법은 목적, 대상이고, 정신은 그 방법이 되겠죠.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어는 무엇일까요? 예. 바로 내가, 우리가 주어가 되겠죠. 연결해 보면, “우리 원불교인은 정법을 바르게 믿는다.”가 되죠.
오늘 설교주제인 정법정신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이 정법이고, 정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인가? 라는 것입니다.
정법정신을 말함에 있어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문의 바를 정자에 대한 의미입니다. 누구나 다 아시죠. 정은 ‘바를 정’ 이라고 하죠.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고, 숫자를 셀 때도 바를 정자로 표시합니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품계도 정1품, 정2품 등 정으로 표시했습니다. 우리 교리중 사대강령에도 정각정행이 있죠. 우리 교도님들 법명에도 ‘정’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법산 오정법님이 계시네요.
정은 ‘바르다, 바로잡다, 갖추어지다’의 뜻을 갖고 명사로 쓸 때는 옳은 길, 올바른 일을 말합니다. 글자의 자형을 보면, 한일에 그칠지의 부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를 정자는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바르다’를 뜻하는 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 멈추어 살핀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하는 공부가,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믿는 원불교의 법이 나의 신앙이 올바른지. 오늘 멈추어 살피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정법의 시대
후천개벽시대의 정법의 요청
먼저 정법의 시대적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정법, 상법, 말법이라 하여 부처님이 입멸한 후 불법의 흥망성쇠를 이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정법시대는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를 충실하게 따르고 서로 가르치며 닦아서 모두가 도를 증득하는 시기입니다. 상법시대는 가르침과 수행자는 있어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없는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말법시대는 교법은 있으나 수행과 증과가 없는 시대를 말하는데, 바른 법을 배우고 닦기 보다는 기복과 사술을 좋아하고, 무지와 사견으로 쓸데없는 이론을 주장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라고 말합니다. 보통 각 시기를 1000년 씩 해서 3천년 후에는 새로운 미륵부처님이 오신다는 미륵하생신앙이 불교에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이신 정산종사께서는 원불교의 개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새시대의 새부처님으로 오신 이유를 새로운 정법시대의 요청으로 설명하십니다. 정산종사법어 기연편 15장을 보면, “영산회상이 지난지 이미 삼천년이 되옵고 동서 각지에 성자의 자취가 끊어진지 또한 오래 되었다. 참된 교화가 행하지 못하고 바른 법이 서지 못한 위기에 당하였다. 이 때에 대종사께서 희미한 불일을 도로 밝히시고 쉬려는 법륜을 다시 굴려 주셨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보면 대종사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원불교를 개교하신 이유는, 새로운 정법회상을 건설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되죠. 그렇다면 왜 정법을 요청하게 되었는가?
정산종사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물질의 문명이 극도로 발달되는 반면에 정신의 세력이 날로 쇠퇴하여, 세상은 형식의 가면으로 변환하고 사람은 욕심의 구렁에 빠지게 되어, 천하의 형세가 크게 어지럽고 창생의 도탄이 날로 심하여졌다. 그러한 위기에 당하여 대종사께옵서 구원 겁래에 세우신 큰 서원으로 이 세상에 탄생하시게 되었다.”
이것이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새시대의 새부처님으로 이땅에 오신 이유이고, 원불교라는 종교를 새 시대의 새 종교로 내놓게 된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법이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간단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정법회상을 만들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법은 당연히 정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법이 무엇인가? 법신불 일원상을 종지로 교리의 강령인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가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정법의 핵심이 되겠죠. 교도님들! 동의하십니까?
우리 원불교인들은 교법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런 표현들을 씁니다. ‘일원대도’ 라는 말과 ‘대도정법’.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일원교법이야말로 대도이기 때문에 일원대도라 하고, 그런 대도를 바탕으로 사은사요 삼학팔조라는 바른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도정법이 되는 것이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의 모임을 일원대도 정법회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도님들! 대종사님의 가르침이 어디에 담겨있습니까? 네, 바로 정전입니다. 정전에서 정은 바를 정자입니다. 왜 正典이라고 하셨을까? 정산종사님께서는 정전을 근원이 되는 경전, 으뜸이 되는 경전이라는 의미로 元經이라 하셨죠. 자신을 바루고 세상을 바루는 법, 다시 말해 정법을 담았기 때문에 정전이 아닐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물음은 도대체 정법의 기준은 무엇인가 라는 거죠. 다시 말해 ‘정법이 갖추어야 할 요건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어느 종교도 자기의 종교가 정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자기 종교가 가장 좋은 종교, 세상을 구원할 종교라고 말합니다. 만약 ‘내 종교가 제일이고, 내 종교의 가르침만이 정법이다.’ 라는 우월적 오만에 빠진다면 오히려 그 종교는 정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조심하고 명심해야 할 것은 정법에 대한 바른 믿음과 확신, 그리고 바른 실행을 통해 우리가 믿는 법이 정법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정법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어느 법이 정법이냐? 제불제성의 심인의 자리에서 보면 정법 아님이 없죠. 문제는 뭐냐? 그 종교에 성자정신이 제대로 살아있느냐? 부처님, 예수님, 마호멧 등 성자들의 근본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있느냐 하는 거죠. 형식과 장엄이 아니라, 생생이 살아 꿈틀거리는 법의 등불, 진리의 횃불이 중요한 거죠. 이러한 기준은 우리 원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요훈품41장에서 “도가의 명맥(命脈)은 시설이나 재물에 있지 아니하고, 법의 혜명(慧命)을 받아 전하는 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
최근에 저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봤습니다. 주위에서 좋다고 하도 추천을 해서 꼭 보고 싶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가난한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뮤지컬 영화로서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인 장발장은 빵 한조각을 훔친 죄로 평생 범죄자가 되어 쫒겨 다닙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인생을 저주하며 힘들게 살아가던 장발장의 영혼이 하나님의 깨끗한 사랑으로 구제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제가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을 받은 장면은, 주인공인 장발장이 수도원 의자에 앉아 그의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야말로, 용서요, 사랑이요, 치유요, 구원이라 보았습니다. 천국으로의 초대였습니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 위대한 종교입니다. 깨달음과 자비를 실천하는 불교는 어떻습니까? 2500년의 거룩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종교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종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원불교가 이 땅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요구하는 정법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정법의 기준
대종사님의 법문을 중심으로 정법의 기준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한 제자가 여쭙습니다. “어떠한 것을 큰 도라 이르나이까.” 대종사님께서는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도요, 적은 수만 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도라 이르나니, 그러므로 우리의 일원 종지와 사은 사요 삼학 팔조는 온 천하 사람이 다 알아야 하고 다 실행할 수 있으므로 천하의 큰 도가 되나니라.” <교의품 2장>
대종사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종교는 시대와 지역을 따라 어느 한 분야를 담당했고 교화를 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한 학인이 정산종사님께 묻습니다. “돌아오는 세상에는 어떠한 법이 제일 주장이 되겠습니까?” 말씀하시기를 “제일 원만하고 바르고 사실된 법이 주장이 된다. 과거 시대에는 모든 교법이 각각 편협한 지역에서 일어나 그 시대의 인심에 맞추어 성립되었기 때문에 비록 한면에 치우치는 법이라도 능히 인심을 지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상의 교통이 더욱 열리고 시대의 사상이 서로 교환되므로, 사면을 다 통하는 원만한 법과 과불급이 없는 바른 법이 아니면 대중의 마음을 두루 지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과거 시대에는 인심이 대개 미개하므로 모든 교법이 방편과 장엄을 많이 이용해 왔으나, 앞으로는 인심이 차차 밝아지므로 사리를 바로 해석하고 사실로 활용하는 법이 아니면 또한 대중의 마음을 지도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도운편 7장>
후천개벽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정신이 주체가 되어 물질을 선용해야 하고, 신앙과 수행이 겸전해야 하고, 영과 육이 쌍전해야 하고, 이와 사를 병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에는 원만한 종교, 사실적인 종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원불교 정법의 기준이 있다고 봅니다. 열린종교, 원만한 종교, 조화의 종교, 생활종교, 실천의 종교. 이것이 원불교 교법의 위대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원불교의 대도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가? 더딘가?
그런데, 원불교의 교법이 대도정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원불교 교화는 왜 더딘가? 저는 더딜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일체중생을 태울 반야용선, 큰 배는 바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인지가 밝아지고 세상이 더 열릴수록 세상이 원불교의 정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원불교 교화는 방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공법으로 좀 더디더라고 넓은 길을 올바르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를 다닐 때, 원불교 교리해석학의 대가이신 석산 한종만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습어요. “원불교 교법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아직 인지가 어두워서,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 이런 최상승법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이 밝아짐에 따라서 우리 교법이 크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기 앉아 계신 우리 교도님들은 남 먼저 이 법을 알아보신 참으로 눈 밝은 분들이십니다. 대종사님께서 원기 100년 안에 이 회상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종사님 수첩에 적어 논 숙겁의 인연들이라 하셨는데,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우리 법을 요구 하고 있고, 세상이 원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의 종교는 원불교다, 원불교야 말로 참종교”라고 세상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이 정법을 올바르게 믿고 올바르게 실행하는 일입니다. 참다운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다음은 정신, 바른 믿음이란 무엇인가?
정법은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법은 정신, 바른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반대로 바른 믿음에는 바른 법, 정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믿음인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정법을 믿는 것이고, 진리적으로 믿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정산종사께서는 법훈편 14장에서 “모르고 믿으면 미신”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상의 신앙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네, 일원상의 진리를 믿으며, 믿으며, 믿으며... 진리 그대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진리 그대로 믿는 것이 바른 正信입니다.
세상을 보면 바른 믿음이 아니라 맹신, 광신, 미신, 기복 등으로 잘못된 종교 신앙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종교로 인해 지혜와 복된 생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종교 신앙으로 개인이 타락하고, 고통에 빠지게 되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 믿음이 중간에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가느냐 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특신급 설명에서 “이 공부 이 사업에 재미를 붙이고 반신반의가 없는 경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절만 믿고 반절은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온전히 믿는 것이 정법정신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특신은 “정법정신(正法正信)으로 마음의 표준이 서져서 일생뿐 아니라 영생을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에 몸과 마음을 귀의한 경지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정신(正信)하고 있는가?
저는 오늘 ‘정법정신’에 대한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네 가지 반성을 통해서 저의 믿음을 반조해 보고자 합니다. 교도님들도 함께 반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나는 대종사님께서 내주신 일원교법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에 세상을 구원할 대도요, 대법임을 확신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일원종지를 바탕으로 한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가 가장 원만한 교법으로 지혜를 밝히고 복을 가져올 사실적 도덕임을 확신하고 있는가?
셋째, 나는 나의 믿음이 환경과 시일을 따라 물러나거나 끊어지지 않고 어떠한 어려운 경계를 당할지라도 한결 같은 믿음으로 영생을 일관할 수 있는가?
넷째, 나는 나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능히 전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실력을 갖고 있으며,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가?
우리 원남교당 교도님들! 맞이하는 일주일도 기쁨과 은혜 충만한 생활, 지혜와 복이 넘치는 생활되시고, 항상 정법정신하는 생활되시길 기원하면서 오늘 저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국 13-02-04 13:57
 
정법정신의 생활화 꼭 유념하겠읍니다.
이렇게 옮겨놓으니 참 좋읍니다. 관리자님 수고가 많으셨내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이렇게 좋은 법설을 편하게 읽고 들을수있음을 항상 감사해야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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